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와 실제로 재미있는 영화의 차이

아카데미 작품상

🎬 아카데미 작품상 영화, 진짜 재미있는 걸까?

퇴직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뭔지 아십니까. 밀린 영화 보기였습니다. 30년 직장 생활 동안 “나중에 봐야지” 하면서 메모해 둔 영화 목록이 수첩 한 권 분량이었으니까요. 그 목록 맨 위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들이 줄줄이 적혀 있었습니다. 명작이니까, 좋은 영화니까, 어른이 되면 꼭 봐야 한다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던 겁니다.

근데 막상 보니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기대했던 것과 꽤 달랐습니다. 어떤 영화는 정말 가슴을 울렸고, 어떤 영화는 두 시간 넘게 버티다가 결국 리모컨을 들었습니다. 그 경험을 하고 나서 이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아카데미가 선택한 영화”와 “내가 진짜 즐겁게 본 영화” 사이에 뭔가 묘한 간극이 있다는 걸 느꼈거든요.

🎥 퇴직 후 본격적으로 아카데미 수상작을 훑어봤습니다

처음엔 의욕이 넘쳤습니다. 순서대로 정주행 하려고 했으니까요. 제 기억이 맞다면, 처음 두어 편은 굉장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전쟁과 인간의 존엄성을 다룬 묵직한 영화, 인종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린 작품 같은 것들이요. 보고 나서 멍하니 앉아 있다가 괜히 옛날 생각도 나고, 감정이 복잡하게 올라오는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열 편쯤 넘어가니까 슬슬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거 제가 처음 알아챈 건 아니겠지만, 직접 겪어보니 더 선명하게 느껴졌습니다. 아카데미 수상작에는 공통된 문법이 있더라고요. 역사적 배경, 사회적 메시지, 긴 러닝타임, 느린 전개, 그리고 어딘가 비장한 분위기. 이 조합이 거의 공식처럼 반복됩니다.

반면에 제가 진짜 재미있게 본 영화들을 떠올려 보면 좀 다릅니다. 직장 다닐 때 동료들이랑 퇴근 후에 몰래 보러 갔던 SF 블록버스터, 아내가 피곤하다고 먼저 자고 나서 혼자 새벽에 끝까지 버티며 본 스릴러, 아들이랑 소파에서 뒹굴면서 깔깔 웃었던 코미디. 이런 영화들은 수상 이력 같은 게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근데 지금도 그 기억이 더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 아카데미 수상작에서 진짜 좋았던 점

그렇다고 아카데미 수상작을 폄하하려는 건 절대 아닙니다. 좋았던 점도 분명히 있었으니까요.

  • 생각할 거리를 줍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틀씩 머릿속에서 그 장면이 맴도는 경험, 아무래도 아카데미 수상작에서 더 자주 겪었습니다. 직장 다닐 땐 그럴 여유가 없었는데, 퇴직하고 나서야 그 깊이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 배우의 연기가 다릅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상업 영화에서는 배우가 ‘캐릭터’를 연기한다면, 아카데미 수상작에서는 배우가 ‘사람’을 연기하는 느낌이랄까요. 눈빛 하나, 침묵 하나에 무게가 있습니다.
  • 나이 들수록 더 잘 보입니다. 이건 진심입니다. 30대에 봤다면 그냥 지루했을 영화가, 58세에 보니 완전히 다르게 다가옵니다.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본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게 아카데미 수상작의 진짜 강점인 것 같습니다.

😅 솔직히 아쉬웠던 점,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이니까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근데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가장 아쉬운 건 아카데미가 선택하는 기준이 ‘재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게 당연한 거긴 하죠. 아카데미는 예술적 성취와 사회적 의미를 평가하는 자리니까요. 근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아카데미 수상작 = 좋은 영화 = 재미있는 영화”라는 등식을 무의식적으로 믿는다는 겁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 믿음을 가지고 보러 갔다가 “이게 왜 좋다는 거지?” 하고 고개를 갸웃하는 경험, 한 번쯤은 다들 있으셨을 겁니다.

두 번째 아쉬운 점은 영화가 너무 메시지를 들이밀 때입니다. 어떤 작품은 보다 보면 “이걸 느껴야 해, 이걸 깨달아야 해”라는 압박감이 화면 밖으로 넘쳐 나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어떤 영화는 정말 교과서처럼 느껴졌습니다. 감동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피곤한,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강의를 듣는 것과 이야기를 듣는 건 분명히 다르거든요.

세 번째로,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영화는 좀처럼 뽑히지 않는다는 점도 아쉽습니다. 수백만 명이 울고 웃었던 영화, 개봉하자마자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오래도록 회자되는 영화들이 시상식에서는 외면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중의 사랑을 받은 것 자체가 예술적 가치의 증거가 될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 자주 받는 질문들

Q. 아카데미 수상작은 다 어렵고 지루한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가 본 것들 중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빠져들었던 작품들이 꽤 있었습니다. 다만, 그 비율이 100%는 아니라는 거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절반 정도는 “좋은 영화인 건 알겠는데, 다시 보고 싶진 않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일단 장르와 주제를 먼저 파악하고, 본인 취향과 맞을 것 같을 때 보시는 게 좋습니다.

Q. 그럼 재미있는 영화가 더 좋은 영화 아닌가요?

이게 제일 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제 나름의 기준은 이렇습니다. 보는 순간 즐거운 영화가 있고, 보고 나서 오래 남는 영화가 있습니다. 둘 다 좋은 영화입니다. 다만 종류가 다를 뿐이에요. 비타민 같은 영화가 있고 보약 같은 영화가 있다고나 할까요. 30년 직장 생활 하면서 힘들 때 저를 위로해준 건 솔직히 비타민 같은 영화들이 더 많았습니다.

Q. 그럼 어떤 영화를 봐야 하나요?

이건 제가 감히 정답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다만 제 경험상, 기분이 처지고 힘들 때는 아카데미 수상작보다는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영화가 낫습니다. 반대로 무언가 생각하고 싶고 감정을 깊이 느끼고 싶을 때,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 앞에 서 있을 때는 묵직한 수상작들이 뜻밖의 위안을 줍니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고르시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합니다.

🎞️ 마무리하며

퇴직하고 나서 영화를 많이 보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습니다. 영화에도 격이 있다, 수준이 있다는 생각을 오래 했는데, 이제는 그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압니다. 바로 “그 영화가 그 순간의 나에게 필요했느냐”는 것입니다.

아카데미 수상작은 분명히 의미 있는 영화들입니다. 그 자리가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수상했으니까 재미있을 것이다”라는 기대는 조금 내려놓는 게 좋겠습니다. 반대로 “상 못 받은 영화는 별로다”라는 편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영화는 영화입니다. 웃으면 된 거고, 울면 된 거고, 생각하면 된 겁니다.

저는 오늘도 소파에 앉아서 리모컨을 들겠습니다. 뭘 볼지는 그날 기분에 따라 정합니다. 그게 퇴직 후 제가 배운 가장 소박한 자유입니다. 이 글이 영화 고를 때 작은 참고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정보처리방침 | 이용약관 | 문의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