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퇴직하고 나서야 제대로 들여다본 뮤지컬 영화
솔직히 말하면, 저는 뮤지컬 영화를 오랫동안 “나랑은 거리가 먼 장르”라고 생각했습니다. 30년 넘게 직장 다니면서 뭔가 노래하고 춤추는 영화를 보면 괜히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랄까요. 퇴직하기 전까지는 액션이나 스릴러만 골라봤습니다. 주말 저녁에 피곤한 몸 이끌고 틀어놓기엔 자극적인 게 편했거든요.
근데 퇴직하고 나니까 시간이 갑자기 너무 많아졌습니다. 하루 종일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날들이 생기더라고요. 그때 집사람이 뭔가 밝은 거 좀 보라면서 틀어준 게 뮤지컬 영화였습니다. 처음엔 억지로 봤습니다. 그냥 옆에 앉아 있었다는 표현이 더 맞겠네요. 근데 막상 보다 보니 이게 단순히 “노래하는 영화”가 아니더라고요. 뭔가 종류가 달랐습니다. 같은 뮤지컬 영화인데 어떤 건 가볍고 즐거웠고, 어떤 건 다 보고 나서 한참 멍하니 앉아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 차이가 뭔지 궁금해서 이것저것 찾아보고, 여러 편 더 보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뮤지컬 영화에도 결이 꽤 다른 두 가지 흐름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 합니다. 뮤지컬 영화 입문을 고민하시는 분들께, 제가 헤맸던 길을 조금은 줄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글을 쓰게 됐습니다.
🎵 첫 번째 결 — 클래식 무대형 뮤지컬 영화
화려함보다는 진심이 먼저입니다
제가 편의상 “클래식 무대형”이라고 부르는 이 흐름은, 쉽게 말하면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무대 뮤지컬을 영화로 옮긴 것들입니다. 원작 뮤지컬이 먼저 있고, 그걸 영화화한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레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시카고, 맘마미아 같은 작품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 계열의 영화들은 노래 자체에 엄청난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대사 대신 노래로 감정을 전달하는 장면이 많고, 가창력이 스토리 전달의 핵심 수단이 됩니다. 처음 봤을 때 저는 이게 좀 어색했습니다. 일상적인 대화를 노래로 하는 장면에서 “이게 현실적으로 말이 되나”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거든요. 사실 저도 처음엔 레미제라블 보면서 중간에 좀 졸았습니다. 고백이지만요.
근데 두 번째로 봤을 때는 달랐습니다. 노래 가사에 집중하니까 그게 그냥 멜로디가 아니라 그 인물이 하는 말이더라고요. 장발장이 부르는 「What Have I Done」 같은 곡은, 대사로 설명했으면 10분 걸릴 내면의 고통을 3분 안에 다 보여주더라고요. 그제야 이 장르가 왜 수십 년째 사랑받는지 조금 이해가 됐습니다.
이 계열의 영화들은 대체로 묵직합니다. 가볍게 틀어놓고 보기엔 조금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주제도 보통 인간의 고통, 사랑, 구원, 용서 같은 것들이라서 감정적으로 소진되는 느낌도 있습니다. 이게 단점이기도 하고, 또 이 장르만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 두 번째 결 — 팝뮤직 기반 감성 뮤지컬 영화
익숙한 노래가 새로운 이야기가 됩니다
또 다른 흐름은 제가 “팝뮤직 기반 감성형”이라고 부르는 쪽입니다. 이건 원작 무대 뮤지컬이 없는 경우가 많고, 처음부터 영화를 위해 만든 음악이거나, 이미 잘 알려진 팝송들을 이야기에 엮어넣은 형식입니다. 라라랜드, 위대한 쇼맨, 그리고 맘마미아도 어느 정도는 이쪽 감성에 걸쳐 있습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요즘 나오는 뮤지컬 영화들은 대부분 이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계열은 일단 진입 장벽이 낮습니다. 노래가 어렵지 않고, 리듬이 대중적이라 자연스럽게 몸이 움직입니다. 영화 보면서 흥얼거리게 되는 경험, 이 계열에서 자주 생깁니다. 위대한 쇼맨 봤을 때 「This Is Me」 나오는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딱히 슬픈 내용도 아닌데 말이죠. 그냥 음악이 몸에 들어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스토리는 보통 꿈, 열정, 사랑의 좌절과 회복 같은 테마입니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내용이 좀 얇다”고 하기도 하는데, 저는 그게 꼭 단점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퇴직하고 나서 복잡한 것들 잠깐 내려놓고 싶을 때, 이쪽 영화들이 딱이었거든요.
다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노래 장면이 너무 화려하게 만들어진 탓에, 정작 이야기 흐름이 끊기는 느낌이 드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라라랜드도 초반에 고속도로 위 군무 장면이 너무 길어서 “이게 뮤직비디오인가” 싶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물론 나중엔 그 장면 자체가 좋아지긴 했습니다만.
🔍 직접 여러 편 보고 나서 느낀 차이
이 두 흐름을 오가며 여러 편 보다 보니, 제 안에서 뭔가 구분이 생기더라고요. 클래식 무대형은 영화가 끝난 뒤 오래 남습니다. 보고 나서 며칠은 노래가 머릿속에 맴돌고, 인물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감정적으로 깊이 파고드는 느낌입니다. 반면 팝뮤직 기반 감성형은 보는 동안 최고로 즐겁습니다. 근데 일주일 지나면 어떤 내용이었는지 가물가물한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 더 좋으냐고 묻는다면 저는 솔직히 둘 다 좋습니다. 단지 그날의 기분에 따라 다르게 고릅니다. 마음이 무겁고 뭔가 깊은 걸 보고 싶을 땐 레미제라블 같은 걸 꺼냅니다. 그냥 오늘 기분 좋게 저녁 보내고 싶을 땐 위대한 쇼맨이나 맘마미아를 틀어놓습니다.
한 가지 실패담도 말씀드리자면, 처음 뮤지컬 영화 입문할 때 “뮤지컬이니까 다 비슷하겠지” 하고 기대 없이 골랐다가 뮤직비디오 같다는 느낌에 실망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반대로 클래식한 작품을 처음에 봤다가 너무 무거워서 도중에 껐던 경험도 있고요. 입문할 때 순서 같은 게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습니다.
🙋 어떤 분께 어떤 쪽이 맞을까요
팝뮤직 기반 감성형이 맞는 분
- 뮤지컬 영화가 처음이고 일단 부담 없이 보고 싶으신 분
- 음악 자체를 즐기고 싶고, 영화 보면서 신나고 싶으신 분
- 퇴근 후 혹은 주말 저녁, 머리 비우고 싶을 때
-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같이 볼 만한 영화를 찾는 분
이런 분들께는 위대한 쇼맨 또는 맘마미아를 먼저 권해드립니다. 보다가 자연스럽게 노래 따라 부르게 될 겁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했습니다.
클래식 무대형이 맞는 분
- 영화에서 깊은 감동과 여운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
- 인간의 감정, 삶, 윤리 같은 묵직한 주제에 관심 있으신 분
- 혼자 조용히 몰입해서 보고 싶은 날
- 뮤지컬 영화를 몇 편 보고 나서 좀 더 깊이 들어가고 싶은 분
이런 분들께는 레미제라블이나 시카고를 권합니다. 단, 처음 볼 때 졸려도 끝까지 보시길 추천합니다. 두 번째 볼 때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되는 경험을 하실 겁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 마무리하며
뮤지컬 영화가 손발 오그라드는 장르라고 생각하셨다면, 저도 한때 그랬습니다. 근데 막상 제대로 한 편 보고 나면 생각이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될 겁니다. 노래가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니라, 그 인물의 말이고 감정이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뮤지컬 영화는 전혀 다른 것이 됩니다.
저 같은 퇴직자가 이 나이에 뮤지컬 영화 블로그를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인생이 참 재미있습니다. 뮤지컬 영화를 처음 시작해보고 싶으신 분들께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오늘 저녁, 한 편 골라서 틀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 첫 한 편이 생각보다 괜찮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