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 감독 작품 세계 한국영화사의 거장

🎬 임권택 감독 작품 세계 한국영화사의 거장

요즘 OTT로 영화 보다가 문득 옛날 영화들이 그리워졌습니다. 넷플릭스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것들만 보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진짜 좋아했던 영화가 뭐였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지난달부터 임권택 감독 작품을 처음부터 다시 정주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막상 다시 보니까 예전에 느꼈던 것과 완전히 다른 겁니다.

30년 직장생활 끝내고 퇴직한 지 2년 됐는데, 시간이 남으니까 영화를 그냥 “때우기용”으로 보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임권택 감독 영화를 다시 틀었는데, 와. 젊을 때는 그냥 “한국적인 영화”라고만 생각했거든요. 지금 보니까 완전히 다른 영화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바로 그겁니다. 같은 감독의 작품인데 <서편제>와 <춘향전>이 주는 느낌이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싶어서요.

📽️ 서편제: 한의 정서를 소리에 담다

<서편제>는 1993년 작품입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당시 서울 관객 100만을 처음 넘긴 한국영화였을 겁니다. 저도 그때 극장에서 봤는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엔 좀 지루했습니다.

그때 제가 서른 중반이었거든요. 판소리가 뭔지도 잘 몰랐고, 그냥 “예술영화니까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갔던 것 같습니다.

근데 지금 다시 보니까요.

유봉이 송화 눈을 멀게 하는 그 장면에서 숨이 막히더라고요. 예전엔 “저게 말이 되나” 싶었는데, 지금은 그 집착과 광기가… 이해가 된다고 해야 할까요. 30년 동안 한 가지 일에만 매달렸던 제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물론 저는 그렇게 극단적이진 않았지만요.

  • 촬영 스타일: 롱테이크와 고정 샷 위주. 카메라가 인물을 쫓아가기보다 인물이 카메라 앞을 지나가게 합니다
  • 색감: 전체적으로 탁하고 흙빛 나는 톤. 한국의 산과 들이 그냥 배경이 아니라 등장인물처럼 느껴집니다
  • 소리의 역할: 판소리가 대사보다 많은 걸 전달합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사 없이 소리만 나오는 장면이 20분은 넘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진도 아리랑 부르면서 걸어가는 그 유명한 장면 있잖아요. 6분짜리 원테이크인데, 젊을 때는 “길다” 싶었거든요. 지금은 그 6분이 짧게 느껴집니다. 사람이 이렇게 변하는구나 싶었습니다.

🎭 춘향전: 고전을 현대 영화 문법으로

<춘향전>은 2000년 작품입니다.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한국영화 최초로 진출한 작품이기도 하고요. <서편제> 이후 7년 만에 임권택 감독이 다시 판소리를 소재로 삼은 건데, 접근법이 완전히 다릅니다.

사실 저도 처음엔 “또 판소리 영화인가” 싶었습니다.

근데 막상 보니까 이건 판소리 “영화”가 아니라 판소리 “공연”과 영화의 결합이더라고요. 실제 조상현 명창의 공연 장면과 극 영화가 교차 편집됩니다. 처음엔 이게 좀 어색했습니다. 몰입하려는데 갑자기 공연 장면 나오면 끊기는 느낌이랄까요.

근데 중반 넘어가면서 그게 오히려 묘한 리듬을 만들어냅니다.

  • 촬영 스타일: 훨씬 역동적입니다. 카메라가 움직이고, 클로즈업도 많고요
  • 색감: <서편제>보다 화사합니다. 춘향이 입은 한복 색깔이 지금 봐도 예쁘더라고요
  • 소리의 역할: 판소리가 내레이션처럼 작동합니다. 이몽룡과 춘향의 감정을 조상현 명창이 대신 설명해주는 느낌

이효정 배우가 연기한 춘향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당시 신인이었을 텐데, 기생집 딸이면서도 당당한 그 묘한 균형을 잘 잡았더라고요.

🔍 두 작품을 비교하며 느낀 차이점

솔직히 말씀드리면, 두 작품 연속으로 보고 나서 좀 혼란스러웠습니다.

같은 감독, 같은 판소리 소재인데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싶어서요. 며칠 생각해보고 나서야 정리가 됐습니다.

<서편제>는 “안으로” 파고드는 영화입니다. 카메라도 인물도 관객도 다 같이 그 한의 세계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느낌이에요. 보고 나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게 나쁜 게 아니라, 그냥 그런 영화입니다.

<춘향전>은 “밖으로” 펼쳐지는 영화입니다. 관객이 판소리 공연 객석에 앉아서 무대를 바라보는 느낌. 춘향과 이몽룡의 사랑 이야기도 있지만, 그걸 “보는 우리”도 영화의 일부가 됩니다.

제가 30대 때는 <춘향전>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볼거리도 많고, 리듬감도 있고, 화면도 예쁘니까요. 근데 지금 58세가 되고 보니, <서편제>의 그 느린 호흡이 편합니다. 아이러니하죠. 젊을 때는 지루했던 게 나이 들으니까 편안해지는 거.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을 말씀드리자면요. <춘향전>은 판소리 공연과 극영화의 교차 편집이 후반부로 갈수록 빈도가 높아지는데, 클라이맥스에서 오히려 감정 고조를 방해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이몽룡이 암행어사로 등장하는 그 통쾌한 장면에서 갑자기 공연 장면으로 넘어가니까, “아, 지금 몰입할 때인데” 싶더라고요. 물론 감독님의 의도가 있었겠지만, 저한테는 그 부분이 좀 걸렸습니다.

<서편제>도 아쉬운 점이 없진 않아요. 동호가 송화를 찾아 헤매는 중반부가 좀 늘어지는 감이 있습니다. 그 방황이 필요한 건 알겠는데, 지금 시대 관객들한테는 조금 힘들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 어떤 분께 어떤 작품이 맞을까요

<서편제>가 맞는 분:

  • 최근에 큰 상실을 경험하신 분. 이별이든, 퇴직이든, 뭔가 놓아줘야 할 것이 있는 분
  • 조용한 주말 오후에 혼자 영화 보실 분. 이건 절대 여럿이 볼 영화가 아닙니다
  • 한국 영화가 “빠르고 자극적”인 것만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
  • 60대 이상이시라면 특히 추천드립니다. 유봉의 집착이 남 일 같지 않게 느껴지실 겁니다

<춘향전>이 맞는 분:

  • 임권택 감독 영화를 처음 접하시는 분. 입문용으로 좋습니다
  • 판소리에 관심은 있는데 완창 공연은 부담스러우신 분
  • 연인과 함께 한국 고전을 새롭게 경험하고 싶으신 분
  • 영화의 “볼거리”가 중요하신 분. <서편제>보다 화면이 훨씬 다채롭습니다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요. 두 작품을 연속으로 보실 거라면 <춘향전> 먼저 보세요. <서편제> 먼저 보면 <춘향전>이 좀 가볍게 느껴질 수 있거든요. 저는 순서 잘못 잡아서 처음에 좀 헤맸습니다.

📝 마무리하며

퇴직하고 나서 “뭐 하고 살지” 고민 많이 했는데, 요즘은 이렇게 옛날 영화 다시 보는 게 제 일과가 됐습니다. 임권택 감독 필모그래피가 100편이 넘으니까, 당분간은 볼 게 넘칩니다.

102편인가 103편인가. 정확하진 않지만 어마어마한 숫자입니다.

젊은 분들한테 임권택 감독 영화 추천하면 “옛날 영화잖아요” 하시는 분들 많은데, 그 “옛날”이 지금 봐도 새롭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특히 <서편제>와 <춘향전>은 같은 재료로 완전히 다른 요리를 만들어낸 좋은 예시라서요.

오늘 저녁에는 <취화선> 볼 예정입니다. 장승업 이야기인데, 이것도 칸에서 감독상 받은 작품이죠. 다 보고 나면 또 글 한 번 써볼까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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