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퇴 후 삶을 다룬 영화 보며 위로받은 이야기
퇴직한 지 이제 8개월째입니다. 30년을 한 직장에서 버텼는데, 막상 나오고 보니 하루가 이렇게 길 줄 몰랐습니다. 처음 한 달은 솔직히 좋았습니다. 아침에 알람 없이 일어나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거든요. 근데 두 달째 접어드니까 뭔가 이상하더라고요.
아내는 출근하고, 아들은 자기 살림 차린 지 오래고. 텅 빈 거실에 혼자 앉아 있으면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불안하다기보단… 그냥 제가 투명인간이 된 것 같은.
그래서 영화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원래도 영화 좋아하긴 했는데, 직장 다닐 때는 주말에 한 편 볼까 말까였거든요. 지금은 하루에 한두 편씩 봅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은퇴 후 삶을 다룬 영화들을 찾아보게 됐습니다. 제 처지와 비슷한 주인공들 이야기가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그 영화들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영화 평론가처럼 분석하는 건 아니고요. 그냥 저처럼 갑자기 시간이 많아진 사람이, 화면 속 인물들 보면서 뭘 느꼈는지 그런 이야기입니다.
📽️ 은퇴 영화, 왜 갑자기 눈에 들어왔을까
사실 저도 처음엔 이런 장르가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영화 하면 액션, 스릴러, 로맨스 이런 거 아닙니까. 근데 막상 검색해 보니까 은퇴한 사람들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꽤 있더라고요.
제 기억이 맞다면, 처음 본 건 일본 영화였습니다. 제목이 정확히 기억 안 나는데, 정년퇴직한 남자가 아내와 어색하게 지내는 내용이었습니다. 보면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이게 완전 제 얘기 같았거든요.
퇴직 첫 주에 아내가 그랬습니다. “당신 집에 맨날 있으니까 좀 불편해.” 농담처럼 말했는데, 전 그게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영화 속 남자도 비슷한 말 듣더라고요. 아,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그 생각이 드니까 좀 편해졌습니다.
은퇴 영화가 눈에 들어온 건 결국 내 상황을 대신 말해주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 제가 본 영화들, 하나씩 이야기해 봅니다
1. 인턴 (The Intern, 2015) 🧓💼
이 영화는 많이들 아실 겁니다. 로버트 드 니로가 70세에 인턴으로 취직하는 이야기입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개봉 당시엔 그냥 가벼운 코미디인 줄 알았습니다. 근데 퇴직 후에 다시 보니까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주인공 벤이 매일 아침 정장 입고 스타벅스 가서 신문 읽는 장면 있거든요. 거기서 멈췄습니다. 아, 이 사람도 할 일이 없어서 루틴을 만든 거구나.
저도 비슷한 짓 했습니다. 퇴직 초반에 괜히 아침마다 동네 카페 가서 아메리카노 시켜놓고 앉아 있었거든요. 뭔가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영화 속 벤 할아버지도 그랬던 거죠.
이 영화의 좋은 점은 노인을 불쌍하게 그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능력 있고, 유머 있고, 젊은 사람들한테 인정받습니다. 물론 현실은 저렇게 안 되겠지만, 보는 동안만큼은 희망이 생겼습니다.
2. 어바웃 슈미트 (About Schmidt, 2002) 😔🚐
이건 분위기가 좀 다릅니다. 잭 니콜슨이 보험회사에서 정년퇴직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영화는 보는 내내 불편했습니다. 주인공이 너무 제 모습 같아서요. 퇴직하고 나서 후임한테 전화하는데 후임이 귀찮아하거든요. 그 장면에서 저도 비슷한 경험 떠올랐습니다.
퇴직 직후에 후배한테 연락한 적 있습니다. 점심이나 먹자고요. 근데 답장이 다음 날 오더라고요. “선배님, 요즘 너무 바빠서요. 다음에 제가 연락드릴게요.” 그 다음은 없었습니다.
영화 속 슈미트도 비슷한 허탈함을 겪습니다. 이 영화의 핵심은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는 불편한 진실인 것 같습니다. 위로받기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3. 버킷 리스트 (The Bucket List, 2007) ✈️📝
잭 니콜슨이 또 나옵니다. 이번엔 모건 프리먼이랑 같이요. 시한부 선고 받은 두 노인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 하러 다니는 이야기입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이 영화 처음 봤을 때가 아마 40대 초반이었을 겁니다. 그땐 그냥 재밌게 봤습니다. “나도 나중에 저런 거 해야지” 이런 생각 하면서요.
근데 지금 다시 보니까 마음이 복잡하더라고요.
저도 버킷 리스트 비슷한 거 적어본 적 있습니다. 유럽 여행, 골프 제대로 배우기, 자서전 쓰기. 막상 시간 생기니까 하나도 안 하고 있습니다. 돈 문제도 있고, 체력 문제도 있고, 무엇보다 혼자 하기엔 뭔가 허전해서요.
영화 속 두 사람은 함께할 사람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저한텐 그런 친구가 없다는 게 좀 씁쓸했습니다.
4. 네브래스카 (Nebraska, 2013) 🚗🏚️
흑백 영화입니다. 치매 초기 증상 있는 아버지가 100만 달러 당첨됐다고 믿고 네브래스카까지 가겠다고 하거든요. 아들이 어쩔 수 없이 같이 떠납니다.
이 영화는 은퇴보다는 노년의 고집, 가족 관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근데 저한텐 다르게 읽혔습니다. 아버지가 왜 저렇게 100만 달러에 집착하는지 생각해 봤거든요.
아마 뭔가 해냈다는 증거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평생 별 볼 일 없이 살았는데, 마지막에 한 번쯤 인정받고 싶은 거죠.
저도 비슷한 감정 있습니다. 30년 일했는데, 남은 게 뭔가 싶을 때요. 영화 보면서 울컥했습니다.
⚠️ 알아두면 좋은 점 (주의사항 포함)
은퇴 영화 본다고 다 위로받는 건 아닙니다. 몇 가지 알아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우울한 날엔 피하세요. 특히 ‘어바웃 슈미트’나 ‘네브래스카’ 같은 영화는 현실적인 편이라 컨디션 안 좋을 때 보면 더 가라앉습니다. 저도 한번 밤에 혼자 보다가 새벽까지 못 잤습니다.
- 배우자랑 같이 보면 대화 소재가 됩니다. 저는 ‘인턴’을 아내랑 같이 봤는데, 끝나고 처음으로 은퇴 후 감정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영화가 물꼬를 터준 셈이죠.
- 서양 영화는 문화 차이가 있습니다. 버킷 리스트처럼 스카이다이빙하고 피라미드 가고 이런 건 솔직히 우리 현실과 거리가 있습니다. 너무 동경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 일본 영화가 공감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시아권이라 그런지 정서가 비슷하더라고요. 은퇴 후 부부 관계, 사회적 고립감 이런 거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영화 보고 나서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 느끼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처음엔 “나도 뭔가 시작해야 하나” 조급했는데, 지금은 그냥 보는 것 자체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막연하게 “영화 좋아하시는 분”이라고 하긴 애매하고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 퇴직 후 3개월~1년 사이, 아직 새 루틴을 못 찾은 분. 하루가 길게 느껴지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영화가 시간도 채워주고 생각할 거리도 줍니다.
- 배우자와 대화가 줄어든 분. 영화 같이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얘기 나눌 수 있습니다. 직접 “나 요즘 힘들어”라고 말하긴 어려워도, 영화 속 인물 얘기는 할 수 있거든요.
- 후회나 미련이 많은 분. “그때 그렇게 할 걸” 이런 생각 자주 드시는 분들요. 영화 속 인물들도 다 비슷한 후회 안고 삽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면 좀 편해집니다.
- 자녀가 독립해서 부부만 남은 분. 이게 생각보다 적응이 어렵더라고요. 관련된 영화들이 꽤 있어서 도움이 됩니다.
반대로, 지금 뭔가 열심히 하고 계신 분들은 굳이 안 보셔도 됩니다. 재취업 준비 중이거나 사업 구상 중인 분들한테는 오히려 템포가 안 맞을 수 있어요.
🌅 마무리하며
글이 길어졌습니다. 오랜만에 이렇게 긴 글 써보네요.
영화가 제 인생을 바꿔주진 않았습니다. 여전히 하루하루 뭘 해야 할지 모르는 날도 있고, 갑자기 허무해지는 순간도 있습니다. 근데 영화 보면서 느낀 게 하나 있습니다.
나이 들어 흔들리는 건 창피한 게 아니라는 것.
화면 속 인물들도 다 흔들립니다. 잭 니콜슨도, 로버트 드 니로도, 이름 모를 일본 배우도. 정년퇴직하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고, 아내와 어색하고, 친구도 없고. 다 비슷하더라고요.
그래서 위로가 됐습니다. 대단한 해답을 얻은 건 아닌데, 그냥…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싶어서요.
혹시 저처럼 갑자기 시간이 많아지신 분이 계시다면, 영화 한 편 틀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답을 주진 않아도, 적어도 두 시간은 혼자가 아닌 기분이 들거든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