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아키라 작품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권하는 영화

구로사와아키라

🎬 구로사와 아키라,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퇴직하고 나서 처음엔 뭘 해야 할지 정말 몰랐습니다. 30년 넘게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하던 사람이 갑자기 시간이 남아돌기 시작하면, 그게 오히려 당황스럽더라고요. 그러다가 집 근처 도서관에 딸린 작은 영화관에서 구로사와 아키라 특별 상영 행사를 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솔직히 처음엔 이름만 들어봤지, 작품을 제대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냥 “어렵고 지루한 흑백 영화”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죠. 근데 막상 보니까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구로사와 아키라에 푹 빠져버렸고, 주변에 영화 좋아하는 친구들한테 “이거 꼭 봐라” 하고 이야기하게 됐습니다. 오늘은 저처럼 구로사와 아키라를 처음 접하려는 분들께, 어떤 영화부터 보면 좋을지 제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 구로사와 아키라가 대체 누구길래?

구로사와 아키라는 일본이 낳은 영화감독 중에서, 아마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이름일 겁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스탠리 큐브릭이나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서양의 거장들도 “구로사와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을 정도입니다. 그냥 일본 영화계의 전설이 아니라, 영화라는 예술 자체에 손을 댄 사람이라고 보면 됩니다. 화면 구성, 인물 묘사, 이야기 구조… 지금 우리가 보는 수많은 영화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근데 이런 배경 설명보다 중요한 건, 그냥 보면 정말 재미있다는 겁니다. 그게 제가 직접 느낀 것입니다.

🌟 처음 보는 사람에게 권하는 첫 번째 영화: 라쇼몽

저도 첫 작품으로 이걸 봤습니다. 처음엔 흑백 화면이라 좀 낯설었는데, 10분도 안 돼서 완전히 빨려들었습니다. 라쇼몽은 한 가지 사건을 두고 여러 사람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살인 사건 하나를 두고, 목격자, 용의자, 피해자 모두가 전혀 다른 증언을 합니다. 누가 진실을 말하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게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직장 생활 오래 하다 보면 “저 사람은 왜 저런 말을 할까” 싶은 순간이 정말 많습니다. 같은 회의 자리에 있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면 사람마다 기억이 전부 다르더라고요. 라쇼몽을 보면서 그 생각이 났습니다. 인간은 자기한테 유리한 방식으로 기억하고, 말하고, 살아간다는 것. 오래 살아온 사람일수록 이 영화가 더 묵직하게 느껴질 겁니다. 러닝타임도 짧은 편이라 부담도 없습니다.

⚔️ 두 번째로 권하는 영화: 7인의 사무라이

이건 좀 깁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세 시간 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에 그 길이 때문에 망설였는데, 일단 시작하면 중간에 끊기가 어렵습니다. 마을을 지키기 위해 일곱 명의 사무라이가 모이는 이야기인데,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닙니다. 일곱 명이 각자 사연이 다르고, 왜 싸우는지가 다 다릅니다. 그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과정을 보는 게 진짜 재미입니다.

저는 이 영화에서 팀장 역할을 맡았던 시절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팀원들 성격이 다 달라서 하나로 모으는 게 얼마나 힘든지, 그 감각이 영화 속에 그대로 담겨 있더라고요. 구로사와 아키라는 이 영화에서 비가 오는 장면을 굉장히 극적으로 찍는데, 그게 지금 봐도 정말 대단합니다. 클라이맥스 전투 장면은 당시 기술로 어떻게 저걸 찍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 세 번째로 권하는 영화: 이키루 (살다)

이건 제가 셋 중에 가장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위암 진단을 받은 평범한 공무원이, 죽기 전에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려고 발버둥 치는 이야기입니다. 화려하지 않습니다. 폭발도 없고 검투도 없습니다. 그냥 한 인간이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는 이야기입니다. 근데 그게 이렇게 가슴에 꽂힐 줄 몰랐습니다.

퇴직하고 나서 한 번씩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뭘 남겼나.” 이 영화 속 주인공도 똑같은 고민을 합니다. 오래 공직에 있었지만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자각. 그리고 그 자각 이후에 달라지는 행동. 이게 저 같은 나이의 사람한테는 단순한 영화가 아닙니다. 보고 나서 한참 멍하니 있었습니다.

⚠️ 알아두면 좋은 점, 그리고 솔직히 아쉬웠던 점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를 처음 볼 때 주의할 게 있습니다. 흑백 화면에 자막까지 읽어야 하다 보니, 처음 15분 정도는 집중력이 좀 필요합니다. 스마트폰을 옆에 두고 보다가는 흐름을 놓치기 쉽습니다. 저도 처음에 라쇼몽을 보면서 앞부분을 두 번 다시 봤습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틀어놓는 영화가 아닙니다.

솔직히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여성 인물들이 너무 수동적으로 그려질 때가 많습니다. 시대적 한계이긴 하지만, 지금 시선으로 보면 불편하게 느껴지는 장면이 종종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7인의 사무라이처럼 긴 작품은 처음 접하는 분들한테 러닝타임 자체가 장벽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각오하고 보시는 게 좋습니다.

💡 이런 분께 특히 권합니다

  • 인생 후반부에 뭔가 허전함을 느끼는 분 → 이키루부터 보세요. 아마 오래 기억에 남을 겁니다.
  • 오래된 영화가 지루할 것 같다는 선입견을 가진 분 → 라쇼몽으로 시작하면 그 편견이 바뀔 겁니다.
  • 팀워크나 인간 관계에 지쳐 있는 분 → 7인의 사무라이가 묘한 위안이 됩니다.
  • 영화 좀 봤다는 분들과 제대로 된 영화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분 → 구로사와를 알면 대화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 마무리하며

퇴직하고 나서 영화 보는 게 취미가 됐는데, 그중에서 구로사와 아키라는 제 취미 생활의 중심이 됐습니다. 처음엔 “어렵고 지루한 흑백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까 오히려 지금 제 나이에, 제 삶의 경험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너무 많았습니다. 젊었을 때 봤다면 몰랐을 것들을 지금이니까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늦게 본 게 잘됐다는 생각도 듭니다. 영화라는 게 꼭 젊을 때 봐야 좋은 게 아니라는 걸, 구로사와를 통해 배웠습니다. 조금이라도 끌린다면, 일단 한 편만 틀어보시길 권합니다. 그 한 편이 여러 편이 되는 건 순식간입니다.

개인정보처리방침 | 이용약관 | 문의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