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영화를 고르는 나만의 기준 세 가지

인생 영화 선택

🎬 퇴직하고 나서야 비로소 생긴 ‘내 취향’이라는 것

솔직히 말하면, 저는 오랫동안 영화를 ‘보는 척’만 했던 것 같습니다. 30년 직장생활 동안 영화관이라고는 회식 자리나 가족 나들이 때 억지로 따라가는 곳이었으니까요. 무슨 영화를 봤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냥 좌석에 앉아서 두 시간을 채우고 나오는 게 전부였던 시절이었습니다.

근데 막상 퇴직하고 나니까, 시간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습니다. 처음 몇 달은 뭘 해야 할지 몰라서 하루 종일 뒤척이다가 TV 앞에 앉았습니다. 그러다 OTT 하나를 구독했고, 거기서 오래된 영화 한 편을 무심코 눌렀다가 그만 울어버렸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그게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영화를 보고 흘린 눈물이었습니다. 뭔가 이상하게 부끄럽기도 하고, 동시에 후련하기도 하고. 그날 이후로 저는 영화를 진짜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 편 두 편 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제 안에 기준이 생기더라고요. ‘이건 내 영화다’ 싶은 것과 ‘아, 이건 나랑 안 맞네’ 싶은 것들이 점점 선명하게 나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그 기준 세 가지를 오랜 친구한테 이야기하듯 편하게 풀어보려고 합니다.


🧭 나만의 인생 영화 기준 세 가지

📌 첫 번째 기준: 보고 난 다음 날 생각이 나는가

처음엔 저도 ‘재미있었냐 없었냐’로만 영화를 판단했습니다.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근데 이게 함정입니다. 재미있는 영화는 너무 많습니다. 보는 동안 신나고, 웃기고, 짜릿하지만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줄거리도 가물가물한 영화들이 그렇습니다.

반면에 제가 인생 영화라고 부르는 것들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이불 속에 누워서도 한 장면이 자꾸 떠오르는 겁니다. 대사 한 마디가 귓가에 맴돌거나, 배우의 표정 하나가 눈에 밟히거나. 정확하진 않지만 제 경험상 이틀 이상 생각나는 영화는 무조건 다시 봤고, 그렇게 두 번 이상 본 영화들이 결국 제 인생 영화 목록에 들어갔습니다.

직장 다닐 때는 뭔가를 ‘곱씹을 시간’ 자체가 없었습니다. 회식하고 들어오면 쓰러지듯 자고, 다음 날 또 달려야 하니까요. 퇴직 후에야 비로소 영화 한 편을 며칠에 걸쳐 소화하는 사치를 누리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 기준이 저한테는 특히 의미 있습니다.

📌 두 번째 기준: 내 인생의 어느 지점과 겹치는가

나이가 들수록 영화를 보는 눈이 바뀌는 것 같습니다. 젊었을 땐 주인공이 멋있으면 그냥 좋았습니다. 근데 요즘 저는 주인공보다 주변 인물을 더 오래 바라보게 됩니다. 조용히 배경처럼 앉아 있는 아버지라든가, 말수가 없는 중년 남자 하나라든가. 거기서 나를 보는 거지요.

어떤 영화를 보다가 불현듯 제 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돌아가신 지 꽤 됐는데, 한 번도 영화를 보면서 아버지를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근데 그날은 그 장면 하나에서 왈칵 뭔가가 올라왔습니다. 그게 뭔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만, 그 영화는 그날로 제 인생 영화가 됐습니다.

영화가 내 인생의 어느 구석을 건드리느냐, 그게 두 번째 기준입니다. 꼭 슬픈 장면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때론 별것 아닌 식탁 장면 하나, 오래된 골목 풍경 하나가 그 역할을 합니다. 그 순간 영화와 내가 연결되는 느낌이랄까. 그 느낌이 오는 영화는 인생 영화 후보로 올라갑니다.

📌 세 번째 기준: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싶어지는가

이 기준은 스스로도 좀 뜻밖이었습니다. 처음엔 생각도 못 했던 기준인데, 어느 날 아내한테 “나 어제 영화 하나 봤는데 진짜…”라고 말을 꺼내다가 멈춘 적이 있었습니다. 왜냐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 영화가 왜 좋았는지, 어떤 장면이 마음에 걸렸는지, 한마디로 정리가 안 되는 겁니다.

근데 그게 오히려 좋은 영화라는 신호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쉽게 설명이 되는 영화는 단순한 영화입니다. 말로 다 옮겨지지 않는 감정이 남아 있을 때, 그래도 누군가한테 이 감정을 나누고 싶을 때, 그 영화가 제 인생 영화에 가깝습니다.

요즘은 가끔 오래된 친구들이랑 만나면 영화 얘기를 합니다. 다들 바쁘게 살다 보니 영화 볼 여유가 없다고들 하더라고요. 저도 불과 얼마 전까지 그랬으니까 충분히 이해합니다. 근데 그럴수록 더 권해주고 싶어지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 충동이 드는 영화라면, 인생 영화입니다.


😅 솔직히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이 기준이 저한테는 잘 맞는데, 솔직히 단점도 있습니다. 첫째로, 이 기준은 느린 영화에 유리합니다. 빠르게 전개되는 장르 영화나 상업적인 블록버스터는 이 기준으로 보면 거의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목록이 좀 편협하게 흘러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끔 스스로도 ‘내가 너무 우울하거나 묵직한 영화만 좋아하는 건 아닐까’ 싶을 때가 있습니다.

둘째로, 개인적인 경험에 너무 의존하다 보니 같은 영화도 상황에 따라 평가가 달라집니다. 어떤 날 상태가 좋을 때 보면 그냥 지나칠 영화가, 피곤하거나 감정이 예민한 날에는 인생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게 꼭 나쁜 건 아니지만, ‘기준’이라고 부르기엔 좀 흔들리는 구석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기분이 차분한 저녁에 영화를 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합니다. 컨디션이 기준을 흐리지 않게 하려는 나름의 방법입니다.


❓ 자주 받는 질문들

Q. 인생 영화가 꼭 오래된 작품이어야 하나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처음엔 고전 영화나 아트하우스 영화만 인생 영화가 된다고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근데 그건 편견이었습니다. 최근에 본 영화 중에서도 제 기준 세 가지를 충분히 통과한 작품들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건 만들어진 시기가 아니라, 나한테 무엇을 남겼느냐입니다.

Q. 영화를 많이 봐야 인생 영화도 생기나요?

꼭 그런 것 같진 않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어떤 지인은 평생 영화를 손에 꼽을 정도밖에 안 봤는데도 자기 인생 영화가 확실하게 있다고 했습니다. 많이 보는 것보다 제대로 느끼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단 한 편이라도 마음 깊이 남은 영화가 있다면 그게 인생 영화입니다.

Q. 인생 영화, 어떻게 찾기 시작하면 좋을까요?

저는 ‘남이 추천한 영화’보다 ‘내가 예전에 보다 말았던 영화’부터 다시 찾아보길 권합니다. 예전에 너무 어렸거나 바빠서 제대로 못 봤던 것들 말입니다. 나이가 달라지면 같은 영화도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저는 그걸 직접 겪고 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 마무리하며

인생 영화란 게 거창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누군가 선정한 리스트에서 골라야 한다거나, 유명한 감독의 작품이어야 한다거나, 그런 조건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그냥 나한테 남는 영화, 내 어딘가를 건드린 영화, 그리고 누군가한테 말하고 싶어지는 영화면 충분합니다.

58년을 살면서 솔직히 제 취향이 뭔지 깊이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일하고, 먹고, 자고, 또 일하고. 그렇게 살다 보니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가’를 물을 틈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근데 영화 하나하나를 제 기준으로 고르고 보다 보니, 이게 영화 취향을 찾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을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퇴직 후 처음으로 생긴, 가장 작고 소박한 취미입니다. 하지만 지금 제 일상에선 꽤 소중한 시간입니다. 혹시 아직 자신만의 인생 영화가 없다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오늘 저녁 편하게 한 편 눌러보시기 바랍니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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