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퇴직하고 나서야 원작 소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직장 다닐 때는 책 읽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정확히는 없었다기보다 만들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퇴근하면 그냥 텔레비전 앞에 쓰러지거나, 아니면 바로 잠들거나. 30년을 그렇게 살았으니까요. 근데 막상 퇴직하고 나니까, 하루가 너무 길더군요. 처음 두 달은 그게 좋았습니다. 그러다 세 달쯤 넘어가니까 슬슬 뭔가를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게 영화였습니다. 하루에 한 편씩 보자고 마음먹었고, 지금까지 꽤 잘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아내가 책상 위에 책 한 권을 툭 올려놓더군요. 제가 얼마 전에 본 영화의 원작 소설이었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거 원작이래. 한번 읽어봐.” 그 한마디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입니다.
처음엔 ‘영화로 이미 봤는데 소설까지 읽어야 하나’ 싶었습니다. 결말도 아는데, 뭐가 다르겠냐 싶었죠. 근데 읽다 보니 완전히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원작 소설과 영화를 함께 비교하면서 보는 걸 취미처럼 삼게 됐습니다. 지금은 영화를 고를 때 원작이 있는지 먼저 확인할 정도가 됐으니, 제가 꽤 깊이 빠진 것 같습니다.
🎬 직접 비교해보니 — 같은 이야기인데 왜 이렇게 다를까
제가 처음으로 제대로 비교해서 본 작품은 『쇼생크 탈출』이었습니다. 영화는 워낙 유명하니까 이미 여러 번 봤던 터였고, 원작은 스티븐 킹의 중편 소설 『리타 헤이워스와 쇼생크 탈출』이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처음 이 소설을 손에 들었을 때 분량이 생각보다 짧아서 좀 놀랐습니다. 두껍지 않거든요. 근데 읽으면서 느낀 건, 영화가 원작의 감정선을 정말 잘 살렸다는 점이었습니다.
다만 다른 점도 있었습니다. 소설에서는 레드, 즉 앤디의 친구가 아일랜드계 백인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모건 프리먼이 연기했는데, 오히려 그쪽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이게 참 묘한 경험이었어요. 원작을 읽으면서 머릿속에서 계속 모건 프리먼의 목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영화가 먼저 각인된 탓이겠죠. 소설 속 레드가 아니라 영화 속 레드가 제 머리를 먼저 차지해버린 셈입니다.
두 번째로 비교한 건 『양들의 침묵』이었습니다. 토마스 해리스의 원작 소설과 조디 포스터, 앤서니 홉킨스가 나오는 영화. 이건 솔직히 소설이 더 무섭더군요. 영화는 시각적인 공포가 강하지만, 소설은 클라리스의 내면 묘사가 훨씬 세밀해서 읽는 동안 더 오싹했습니다. 밤에 혼자 읽다가 잠깐 덮은 적도 있었습니다. 정확히 몇 페이지였는지는 기억 안 납니다만, 한니발이 클라리스의 냄새를 맡는 장면이었던 것 같습니다.
세 번째로 비교한 건 『노인과 바다』였습니다. 헤밍웨이의 소설은 학교 다닐 때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그냥 숙제처럼 읽었고 별로 감흥이 없었어요. 근데 퇴직하고 나서 영화를 먼저 보고, 다시 소설을 읽으니까 완전히 달랐습니다. 아마도 제 나이가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청새치 한 마리와 싸우는 노인의 이야기가, 30년 직장생활 끝에 혼자 남겨진 느낌과 이상하게 겹쳐 보였거든요. 이건 좀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만.
👍 원작 소설과 영화를 비교할 때 좋았던 점
이야기 안으로 두 번 들어가는 기분
하나의 이야기를 소설로 한 번, 영화로 한 번 경험하면 같은 이야기를 완전히 다른 감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소설은 문장의 속도로, 영화는 화면의 속도로 이야기가 흘러가거든요. 그 차이가 생각보다 크고, 그 차이 자체가 또 다른 즐거움입니다.
저는 특히 원작을 읽고 나서 영화를 다시 볼 때 감독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비교하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이 장면은 왜 잘랐을까, 이 대사는 소설 어디에서 가져왔을까. 이런 걸 생각하면서 보다 보면 영화 한 편이 끝나고도 한참을 더 생각하게 됩니다.
인물을 훨씬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영화는 러닝타임의 제약이 있습니다. 아무리 잘 만든 영화도 소설 속 인물의 모든 생각을 담을 수는 없어요. 근데 소설을 읽고 나면 영화 속 인물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 저 눈빛이 그런 의미였구나.’ ‘저 대사가 사실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거였구나.’ 영화만 봤을 때는 그냥 지나쳤던 장면들이 갑자기 입체적으로 살아납니다.
제가 이걸 가장 강하게 느꼈던 건 『파친코』였습니다. 애플 드라마 시리즈이긴 하지만, 원작 소설을 먼저 읽고 나서 드라마를 보니까 선자라는 인물이 완전히 다르게 보였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장면들이 많은데, 소설에서는 선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조용하고 무거운 감정들이 훨씬 더 잘 전달됐습니다. 두 가지를 다 경험하고 나니까 이 이야기가 온전히 내 것이 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독서 습관이 자연스럽게 생겼습니다
퇴직 전까지는 책이랑 거리가 멀었는데, 영화를 좋아하다 보니까 원작 소설에도 손이 가게 됐습니다. 이게 생각보다 좋은 루틴이 됐어요. 영화가 일종의 입구 역할을 해준 거죠. 소설을 처음부터 잡으면 좀 막막할 수 있는데, 이미 이야기를 아는 상태에서 읽으니까 훨씬 진입이 쉬웠습니다. 특히 저처럼 책을 오래 안 읽었던 사람한테는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 솔직히 아쉬웠던 점도 있었습니다
순서를 잘못 선택하면 둘 다 망칩니다
이게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저는 초반에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는 방식을 선택했는데, 어떤 작품은 그게 맞고 어떤 작품은 반대가 맞았습니다. 예를 들어 반지의 제왕 같은 경우, 영화를 먼저 보면 소설이 너무 느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위대한 개츠비』는 소설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는 게 훨씬 나았습니다. 영화는 화려한데 소설에서 느껴지는 그 쓸쓸함이 좀 옅어지더라고요.
정확히 어떤 순서가 항상 맞다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근데 분명히 있어요. 순서를 잘못 선택하면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방해하는 느낌이 생깁니다. 저도 몇 번 이 실수를 해봤습니다.
영화가 소설을 망가뜨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건 좀 쓴소리인데, 솔직히 영화화가 오히려 원작의 이미지를 훼손시키는 경우도 봤습니다. 대표적으로 제가 느낀 건 『다빈치 코드』였습니다. 소설은 페이지를 넘기는 손이 멈추질 않을 만큼 흡입력이 있었는데, 영화는 그 긴장감이 반도 살아있지 않았습니다. 배우 캐스팅이 어쩌고 하는 건 제가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만, 소설에서 느꼈던 그 스릴이 영화에서는 거의 느껴지지 않아 허탈했습니다. 소설을 너무 재미있게 읽은 다음에 영화를 봤더니 더 실망이 컸던 것 같기도 합니다.
시간이 두 배로 듭니다
이건 사실 퇴직한 저한테는 큰 문제가 아닌데, 바쁜 분들한테는 진입 장벽이 될 수 있습니다. 영화 한 편이 두 시간이라면, 원작 소설까지 읽으면 최소 두세 배의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두꺼운 소설이면 일주일도 걸립니다. 저야 시간이 있으니까 괜찮은데, 직장 다니면서 이걸 하려면 꽤 부지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나마 짧은 중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자주 받는 질문들 — 주변 친구들이 물어봤던 것들
Q. 소설이랑 영화, 어느 쪽을 먼저 보는 게 좋을까요?
이게 제일 많이 받는 질문입니다. 제 경험상 정답은 없습니다만, 굳이 말하자면 저는 소설을 먼저 읽는 걸 권합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소설을 먼저 읽으면 머릿속에서 내가 만든 이미지로 인물과 공간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영화를 보면서 감독과 배우가 그걸 어떻게 구현했는지 비교하는 재미가 있거든요. 반대로 영화를 먼저 보면,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영화 장면이 머릿속을 차지해버려서 소설만의 상상력이 좀 방해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건 제 취향이고, 반대를 선호하는 분들도 분명 있을 겁니다.
Q. 영화가 원작보다 더 나은 경우도 있나요?
있습니다. 분명히 있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쇼생크 탈출』이 대표적입니다. 원작 소설도 훌륭하지만, 영화는 거기에 배우들의 연기와 음악이 더해지면서 원작을 뛰어넘는 감동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또 『포레스트 검프』도 그런 경우입니다. 원작 소설이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는데, 읽어보니까 영화가 훨씬 더 따뜻하고 완성도가 높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원작이 무조건 더 낫다는 편견은 버리는 게 좋습니다. 때로는 영화가 원작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Q. 처음 시작하기 좋은 작품이 있을까요?
저는 분량이 너무 많지 않은 작품부터 시작하라고 권합니다. 처음부터 두꺼운 소설에 도전하면 지치거든요. 앞서 말한 스티븐 킹의 중단편 소설들이 영화화된 작품들 — 예를 들면 『스탠 바이 미』의 원작인 『더 바디』 같은 것들이 좋은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량도 적당하고, 영화를 이미 아는 분들이 많아서 비교하기도 쉽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더 바디』는 중편 정도 분량이라 금방 읽을 수 있었습니다.
🎞️ 마무리 — 결국 어느 쪽이 더 나을까요
이 글 제목이 “어느 쪽이 더 나을까”였는데, 솔직히 읽고 나서 답이 없다는 걸 아셨을 겁니다. 저도 처음에는 뭔가 명확한 답을 찾고 싶었습니다. 근데 비교하면 할수록 그 답이 작품마다, 사람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나이나 상황마다 다르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저한테는 두 가지를 함께 경험하는 것 자체가 답이 됐습니다. 어느 쪽이 우월하냐가 아니라, 두 가지가 서로를 보완하면서 이야기 하나를 온전히 이해하게 해준다는 게 제가 경험으로 얻은 결론입니다. 소설은 깊이를 주고, 영화는 생동감을 줍니다. 소설은 상상의 공간을 주고, 영화는 그 공간을 채우는 이미지와 음악을 줍니다.
추천 대상을 말씀드리자면, 저처럼 시간이 생겼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분들한테 특히 권합니다. 책을 오래 안 읽으셨더라도, 좋아하는 영화의 원작을 찾아서 읽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독서 습관이 생깁니다. 또 좋은 이야기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은 분들, 영화를 단순히 소비하는 게 아니라 좀 더 음미하고 싶은 분들한테도 이 방법이 잘 맞을 것 같습니다.
반면 시간이 촉박하거나, 결말을 알면 흥미가 뚝 떨어지는 성격이라면 솔직히 영화 한 편만 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억지로 둘 다 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저는 오늘도 책 한 권을 옆에 두고 영화를 고르고 있습니다.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두 번 경험할지 고민하는 이 시간이, 30년 직장생활보다 훨씬 여유롭고 좋습니다. 그게 제가 이 취미를 계속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