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완벽주의자라고 불리는 진짜 이유

큐브릭완벽주의

🎬 퇴직하고 나서야 제대로 보게 된 두 감독 이야기

직장 다닐 때는 솔직히 영화를 제대로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야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소파에 앉아서 채널 돌리다가 잠드는 게 전부였으니까요. 그런데 퇴직하고 나니까 갑자기 시간이 너무 많아진 겁니다. 처음 몇 달은 뭘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하루 종일 영화만 봤어요. 그게 어느새 습관이 됐고, 지금은 하루에 한 편씩 꼬박꼬박 챙겨 보는 게 제 낙이 됐습니다.

근데 영화를 많이 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감독에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처음엔 배우 중심으로 봤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 영화는 누가 만들었지?” 하고 크레딧을 찾아보게 됐습니다. 그러다 친구 하나가 저한테 이런 말을 했어요. “스탠리 큐브릭이랑 데이비드 핀처, 둘 다 완벽주의 감독이라는데 뭐가 다른 거야?” 저도 그때까지는 그냥 “아, 둘 다 꼼꼼한 감독이구나”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근데 막상 두 감독 작품을 집중해서 보고, 이것저것 찾아보니까 완벽주의의 결이 전혀 다르더라고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 스탠리 큐브릭 — 완벽주의가 아니라 ‘집착’에 가까웠습니다

큐브릭 영화를 처음 본 건 샤이닝이었습니다. 퇴직 초반에 공포 영화 좀 봐야겠다 싶어서 골랐는데, 근데 이게 무서운 건지 불편한 건지 모르겠는 묘한 감각이 계속 남더라고요. 잭 니콜슨이 도끼 들고 문 부수는 장면보다, 복도를 걸어다니는 카메라 움직임이 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카메라 기법 자체가 당시로서는 거의 혁신에 가까운 거였다고 하더라고요.

큐브릭을 완벽주의자라고 부르는 이유, 저는 이게 단순히 “테이크를 많이 찍었다”는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테이크 수는 어마어마하게 많았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샤이닝 촬영 중에 배우 셸리 듀발이 실제로 쓰러질 정도로 반복 촬영을 했다고 했는데, 큐브릭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근데 저는 그게 단순한 고집이 아니었다고 봅니다.

큐브릭은 스스로 촬영, 편집, 음악 선택, 조명 설계까지 전부 직접 관여했습니다. 그냥 “내가 보기에 좋을 때까지”가 기준이 아니라, 자기가 머릿속에 그린 그 장면이 화면에 그대로 나올 때까지였다는 거예요. 이건 30년 직장생활 하면서 느낀 건데, 그런 사람이 팀장이면 팀원이 진짜 힘들거든요. 근데 결과물은 부정할 수가 없는 경우가 있잖아요. 큐브릭이 딱 그랬습니다.

또 하나 제가 흥미롭게 봤던 부분은 큐브릭이 영화 장르를 계속 바꿨다는 점입니다. SF, 공포, 전쟁, 역사물, 에로 스릴러. 한 장르에서 인정받으면 그다음엔 전혀 다른 장르로 갔습니다. 사실 저도 처음엔 이게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기가 잘하는 걸 계속 하면 되지 않나, 싶었거든요. 근데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큐브릭 입장에서는 자기가 이미 완성한 걸 반복하는 게 오히려 불완전한 거였던 것 같습니다. 완벽한 걸 만들고 나면 거기서 멈추고, 또 다른 완벽을 찾아 나선 거죠.

그리고 이건 정확하진 않지만, 큐브릭이 영국에서 거의 은둔하다시피 생활하면서 촬영 준비만 몇 년씩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상과 거리를 두고 오로지 다음 작품에만 집중했다는 거죠. 저는 그게 무서울 정도로 순수한 집착이라고 느꼈습니다. 돈이나 명성이 목적이 아니었다는 거, 작품을 보면 느껴지거든요.

🖥️ 데이비드 핀처 — 완벽주의가 ‘시스템’으로 작동합니다

핀처를 처음 본 건 세븐이었습니다. 꽤 오래전에 봤는데 나중에 퇴직하고 다시 봤더니, 느낌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젊을 때는 결말의 충격에만 집중했는데, 다시 보니까 영화 전체를 감싸고 있는 음울한 색감과 빗소리, 그리고 배우들의 미세한 표정 연기가 얼마나 정교하게 맞물려 있는지가 보이더라고요.

핀처도 분명히 완벽주의자입니다. 테이크를 수십 번, 많게는 백 번 넘게 찍는다는 건 업계에서 유명한 이야기고요. 근데 큐브릭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습니다. 핀처는 디지털 기술과 데이터를 활용해서 완벽을 추구합니다. 촬영 후에도 후반 작업에서 색보정 하나하나, 사운드 믹싱 하나하나를 직접 챙긴다고 하는데, 이게 굉장히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입니다.

핀처의 완벽주의는 어떻게 보면 현대적입니다. 팀과 협업하는 방식도 있고, 기술적 도구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도 있습니다. 배우들이 힘들다고 하는 건 똑같지만, 핀처는 “왜 이 테이크가 필요한가”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감독이라는 평이 많습니다. 근데 저는 그게 큐브릭과 비교했을 때 조금 다른 온도라고 느꼈습니다.

🔍 직접 두 감독 작품을 몰아보고 나서 느낀 차이

퇴직하고 한 달 동안 두 감독 작품을 번갈아 가면서 봤습니다. 사실 이건 좀 무모한 시도였습니다. 큐브릭 작품 몇 편은 보고 나서 한참 멍하니 있어야 했거든요. 특히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처음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어서 중간에 멈출 뻔했습니다.

근데 끝까지 보고 나서, 한 이틀 지나고 나서 갑자기 뭔가 머릿속에서 연결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이게 큐브릭 영화의 특징인 것 같았습니다. 보는 동안은 불편하거나 지루하거나 난해한데, 며칠 지나도 자꾸 생각난다는 거요. 직장 다닐 때 풀리지 않던 업무 문제가 자고 일어나면 해결되는 것처럼, 큐브릭 영화는 보고 나서 무의식 어딘가에서 계속 작동하는 느낌이었습니다.

핀처 영화는 반대였습니다. 보는 동안은 정말 몰입이 잘 됐습니다. 나를 찾아줘 볼 때는 화장실 가는 것도 참으면서 봤으니까요. 근데 다 보고 나면 “아, 재미있었다”로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게 나쁜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게 기술이고요. 근데 큐브릭처럼 며칠씩 머릿속을 맴도는 건 없었습니다.

이걸 느끼고 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큐브릭의 완벽주의는 ‘질문’을 만드는 방향이고, 핀처의 완벽주의는 ‘경험’을 완성하는 방향이다. 둘 다 완벽을 추구하지만, 뭘 완벽하게 만들려 하는지가 다른 겁니다.

🎯 어떤 분께 큐브릭이 맞고, 어떤 분께 핀처가 맞을까요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틀릴 수도 있습니다.

큐브릭 영화는, 영화 보고 나서 뭔가 생각할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분들께 맞을 것 같습니다. 자극적인 재미보다 불편하더라도 오래 남는 걸 원하는 분들이요. 저처럼 시간 여유가 생겨서 뭔가 깊이 있는 걸 천천히 소화하고 싶은 분들한테는 정말 잘 맞았습니다. 다만 처음 보는 분들한테는 쉽게 추천하기 어렵습니다. 진입 장벽이 분명히 있고, 중간에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옵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핀처 영화는, 영화를 즐거운 경험으로 소비하고 싶은 분들께 잘 맞을 것 같습니다. 완성도 높은 스릴러나 심리극을 좋아하신다면 핀처만 한 감독이 없습니다. 친구들이랑 같이 보거나, 영화 처음 입문하는 분들한테 권하기도 훨씬 편합니다. 보는 동안 지루할 틈이 없거든요.

  • 큐브릭 추천 대상: 시간 여유가 있고, 영화 보고 나서 혼자 생각 정리하는 걸 좋아하는 분. 불편함도 감수하면서 깊은 여운을 원하는 분.
  • 핀처 추천 대상: 완성도 높은 이야기와 긴장감 있는 연출을 즐기는 분. 영화를 강렬한 몰입 경험으로 즐기고 싶은 분.

✍️ 마무리하면서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건, 친구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못 해서였습니다. “뭐가 다르냐”고 물었을 때 저는 “음… 둘 다 좋은 감독이야”라고 얼버무렸거든요. 그게 좀 찝찝해서 직접 찾아보고 보고 또 보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 나름의 결론이 생긴 거고요.

큐브릭의 완벽주의가 진짜 무서운 건, 그게 관객을 위한 게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한 완벽이었다는 거, 그게 오히려 영화를 시대를 초월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반면 핀처는 관객이 최대한 완벽한 경험을 하도록 자기 완벽주의를 활용합니다. 방향이 다른 겁니다.

30년 직장생활 내내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는데, 막상 퇴직하고 나서 두 감독을 보면서 완벽에도 방향이 있다는 걸 처음 느꼈습니다. 영화가 이런 걸 가르쳐줄 줄은 몰랐습니다. 오늘도 한 편 보러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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