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가 다시 꺼내 본 최민식의 명장면 모음

최민식명장면

🎬 퇴직하고 나서야 제대로 보이더라고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글을 쓰게 된 건 별거 아닌 계기였습니다. 퇴직하고 몇 달이 지난 어느 오후, 할 일이 없어서 옛날 영화나 볼까 하고 리모컨을 잡았습니다. 그게 다였습니다. 근데 막상 최민식 씨 영화를 다시 틀어놓고 보니까, 30년 직장생활 내내 그냥 흘려봤던 것들이 이번엔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그때는 야근 끝나고 눈이 반쯤 감긴 채로 봤으니까. 그래서 한번 제대로 비교해서 써보고 싶었습니다. 젊을 때 본 최민식과, 쉰여덟이 되어서 다시 본 최민식이 같은 사람인가 싶을 만큼 달랐으니까요.

오늘은 크게 두 가지를 비교해드리려 합니다. 하나는 액션과 분노로 기억되는 최민식, 다른 하나는 무너지는 인간으로서의 최민식입니다. 제가 임의로 나눈 거라 학술적인 분류는 아닙니다만, 다시 꺼내 보면서 이 두 가지가 확실히 다른 결로 느껴졌습니다.

💥 A: 분노하는 최민식 — 몸 전체가 감정이 되는 배우

올드보이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처음 봤을 때는 그 복도 씬에서 그냥 “와 싸움 잘하네” 하고 끝냈습니다. 그게 전부였어요. 근데 이번에 다시 보니까 달랐습니다. 그 장면은 멋있으려고 찍은 게 아닙니다. 지쳐 있고, 숨은 넘어가고, 다리는 풀렸는데 그래도 앞으로 가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30년을 버텨가며 회사 다닌 몸으로 보니까 그 장면이 그냥 영화가 아니더라고요.

분노하는 최민식의 특징은 뭐냐면, 눈입니다. 대사가 없어도 됩니다. 눈이 말을 하니까. 파이란에서도 그랬고, 악마를 보았다에서도 그랬습니다. 악마를 보았다는 솔직히 다시 보기가 좀 힘들었습니다. 잔인해서가 아니라, 그 눈빛이 너무 진짜처럼 느껴져서요. 저 사람 혹시 진짜로 저런 감정을 어디선가 꺼내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배우가 무섭다는 느낌, 처음 받아봤습니다.

이 시기 최민식은 확실히 강렬한 첫인상으로 남습니다. 처음 10분만 봐도 “아, 이 사람이구나” 하고 느껴지는 그런 존재감입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시절 영화들은 감정의 폭이 너무 세서 오래 보고 있으면 지칩니다. 중간에 잠깐 멈추고 싶어질 때가 있었습니다. 강도가 세다 보니 지속적으로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나이가 들고 나면 더 그렇습니다. 그 에너지를 받아내는 체력도 필요하더라고요, 진짜로.

🍂 B: 무너지는 최민식 — 말 없이 스러지는 사람의 얼굴

파이란 이야기는 조금 더 하고 싶습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이 영화는 개봉 당시에 흥행이 그리 대단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근데 지금 다시 보면 이게 최민식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깊은 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주인공 강재가 죽은 여자의 편지를 읽으면서 우는 장면. 대사도 별로 없고, 배경음악도 크지 않습니다. 그냥 그 얼굴 하나로 다 됩니다.

이 쪽 최민식의 특징은 작위적이지 않은 슬픔입니다. 울어야 한다고 느껴져서 우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퇴직하고 나서 혼자 앉아 있을 때 느끼는 그 허탈함, 거창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비어있는 느낌, 그게 저 얼굴이랑 겹쳤습니다. 제가 감정이입을 과하게 한 건지도 모르지만요.

이쪽 최민식은 처음엔 심심해 보입니다. 솔직히 젊었을 때는 별로였습니다. 왜 이렇게 힘이 없냐고 느꼈으니까요. 근데 막상 나이 먹고 보니까 이게 더 어려운 연기더라고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모든 걸 하고 있는. 그게 이 시기 최민식의 진짜 힘이었습니다.

🔍 두 가지를 비교해보면서 제가 느낀 것

직접 비교해보니까 차이가 명확했습니다. 분노하는 최민식은 보는 동안 에너지를 줍니다. 심장이 빨라지고, 뭔가 하고 싶어지는 느낌이 있습니다. 반면 무너지는 최민식은 보고 난 다음에 오래 남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한참 뒤에도 그 얼굴이 어른거립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 이 나이에는 후자가 더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아쉬운 점도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두 유형 모두 공통으로, 최민식이라는 존재 자체가 너무 강해서 간혹 영화 전체가 그분 한 사람에게 쏠리는 느낌이 있습니다. 상대 배우가 묻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영화로서 균형이 잡혀 있느냐고 하면, 그건 좀 아쉬운 작품도 있었습니다. 그분 혼자 다 끌고 가는 영화들은 보고 나면 좀 무겁습니다.

🎯 어떤 분께 어느 쪽이 맞을까요

  • 분노하고 강렬한 최민식가 맞는 분: 뭔가 답답하고 울분이 차 있을 때, 감정을 대신 터뜨려줄 영화가 필요할 때. 올드보이, 악마를 보았다 같은 작품들이 그 역할을 합니다. 대신 혼자 조용히 계신 분들께는 좀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 무너지는 조용한 최민식이 맞는 분: 인생이 어느 정도 지나간 분들, 크게 소리치지 않아도 슬픔을 아는 분들. 특히 중년 이후에 처음으로 파이란을 보신다면, 꽤 오래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 마무리하며

퇴직하고 나서 영화 보는 시간이 늘었는데, 사실 처음엔 이게 그냥 시간 때우기인 줄 알았습니다. 근데 이번처럼 같은 배우를 두고 이리저리 비교해보면서 뭔가를 발견하는 재미가 생기더라고요. 최민식이라는 배우는 그냥 잘 싸우거나 잘 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얼굴 하나로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그게 30년 만에 다시 보고 나서야 보이더라고요. 여러분도 언젠가 시간이 생기면 한번 다시 꺼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아마 예전과는 다른 게 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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