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직하고 나서야 제대로 보게 된 유럽 영화 이야기
퇴직하고 나서 처음 몇 달은 솔직히 뭘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30년 넘게 아침 7시에 일어나서 회사 가고, 저녁에 피곤하게 들어오고, 주말엔 쉬는 게 전부였으니까요. 그러다 어느 날 낮에 소파에 앉아서 넷플릭스를 켰는데, 거기서 처음으로 유럽 영화를 제대로 보게 됐습니다. 그 전까지 저한테 영화란 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한국 상업 영화 정도였거든요. 유럽 영화는 왠지 어렵고 지루할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근데 막상 보니까 완전히 달랐습니다. 처음 본 게 이탈리아 영화였는데, 처음 20분은 사실 졸았습니다. 부끄럽지만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화면에서 눈을 못 떼게 되더라고요. 그 이후로 프랑스 영화, 스페인 영화, 덴마크 영화까지 하나씩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제가 특히 오래 마음에 남았던 두 편을 비교해서 이야기해 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프랑스 영화 「아무르(Amour)」와 이탈리아 영화 「위대한 아름다움(La Grande Bellezza)」입니다.
💙 「아무르」 — 사랑이란 게 결국 이런 건가 싶었습니다
「아무르」는 오스트리아 감독 미하엘 하네케가 만든 영화입니다. 배경은 파리. 80대 노부부 이야기입니다. 아내가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남편이 그 아내를 끝까지 돌보는 내용이에요. 딱 이렇게 설명하면 “그게 뭐가 재밌어?” 싶으실 겁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근데 이 영화, 보다 보면 가슴이 조여옵니다. 드라마틱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음악이 요란하게 깔리는 것도 아닌데, 그냥 두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만 보여주는데 눈물이 납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배경 음악이 거의 없는 장면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고요함이 오히려 더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생각한 건 저희 부모님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어머니 병수발을 몇 년 하셨거든요. 그때 아버지 표정이 화면 속 남편 얼굴이랑 겹쳐 보였습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매일 밥을 떠먹여 주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그러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것. 그게 진짜 사랑이라는 걸 이 영화가 아주 조용하게 보여줍니다.
단점이라면, 솔직히 보는 내내 무겁습니다. 가볍게 켜놓고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닙니다. 중간에 잠깐 멈추고 싶어지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말이 정확하진 않지만, 꽤 오래 머릿속에 맴돌아서 그날 밤 잠을 설쳤습니다. 좋은 영화인데, 그게 또 피곤하기도 했습니다.
🌅 「위대한 아름다움」 — 나는 어떻게 살아온 건가, 싶었습니다
이탈리아 감독 파올로 소렌티노가 만든 「위대한 아름다움」은 분위기가 완전히 다릅니다. 주인공은 로마에 사는 65세 남자 작가입니다. 젊을 때 소설 한 편으로 유명해졌는데, 그 이후 수십 년을 파티와 사교계로 흘려보냈습니다. 영화는 그 남자가 자기 인생을 돌아보는 이야기입니다.
처음 시작하자마자 화면이 너무 화려해서 오히려 당황했습니다. 로마의 밤, 테라스, 음악, 사람들. 사실 저도 처음엔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몰랐습니다. 30분쯤 지나니까 감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영화는 화려함 속에 숨어 있는 허탈함을 보여주는 겁니다.
주인공이 어느 순간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항상 위대한 아름다움을 찾고 있었다. 근데 내가 찾은 건 결국 이것뿐이었다.” 정확한 대사는 아닐 수 있는데, 그 뉘앙스가 그랬습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멈추고 혼자 한참 있었습니다. 30년 직장 생활하면서 내가 뭘 찾고 있었나, 싶어서요. 일 잘하는 사람이 되려고 했나, 아니면 그냥 월급 받으러 다녔나. 쉽게 답이 안 나왔습니다.
이 영화의 단점은 호불호가 꽤 갈린다는 점입니다. 영상미와 음악은 정말 압도적인데, 서사가 느슨합니다. 뭔가 명확한 사건이나 결말을 기대하시는 분은 답답하다고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저도 끝나고 나서 “이게 뭔 이야기였지?” 하고 잠깐 멍했습니다. 근데 그 멍함이 며칠이 지나도 계속 남아 있더라고요. 그게 이 영화의 힘인 것 같습니다.
🔍 두 편을 비교해 보니 이런 차이가 있었습니다
두 영화 다 “인생의 후반부”를 다루고 있습니다. 근데 접근 방식이 전혀 다릅니다.
- 「아무르」는 감정을 정면으로 들이밉니다. 피할 수가 없습니다. 보는 내내 눌리는 느낌입니다.
- 「위대한 아름다움」은 감정을 우회합니다. 화려함으로 포장해서 보여주다가, 나중에 가서야 속에 있던 게 드러납니다.
「아무르」는 보고 나서 한동안 말이 안 나왔습니다. 같이 본 사람이 있었다면 그냥 조용히 앉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위대한 아름다움」은 보고 나서 혼자 뭔가 끄적이고 싶어졌습니다. 일기 같은 거요. 제 기억이 맞다면, 실제로 그날 오래간만에 메모장을 열었던 것 같습니다.
영상 스타일도 다릅니다. 「아무르」는 카메라가 거의 안 움직입니다. 고정된 화면에 두 사람이 있습니다. 그 정적인 느낌이 영화의 분위기와 딱 맞습니다. 반면 「위대한 아름다움」은 카메라가 로마 곳곳을 누빕니다. 음악도 풍성하고, 색감도 화려합니다. 같은 유럽 영화인데 이렇게 다를 수가 있구나 싶었습니다.
🧭 어떤 분께 어느 영화가 맞을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무르」가 맞는 분
- 부모님 병간호나 배우자 돌봄을 경험하신 분
- 말 없이도 전달되는 감정의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
- 마음이 무거워도 괜찮을 여유가 있을 때 보시길 권합니다
- 혼자, 조용한 저녁에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위대한 아름다움」이 맞는 분
- 은퇴했거나 인생 후반을 앞두고 “나는 어떻게 살았나” 돌아보고 싶은 분
- 영상미와 음악을 즐기시는 분
- 명확한 결말보다 여운을 좋아하시는 분
- 살짝 흥분된 기분, 혹은 뭔가 불안한 날 보시면 오히려 잘 맞을 것 같습니다
✍️ 마무리하며
퇴직하고 나서 처음엔 시간이 너무 많아서 당황스러웠습니다. 근데 요즘은 그 시간 덕분에 이런 영화들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직장 다닐 때는 이런 영화 보다가 분명히 잠들었을 겁니다.
유럽 영화가 어렵다는 선입견, 저도 갖고 있었습니다. 근데 막상 보면 어렵지 않습니다. 그냥 다를 뿐입니다. 빠르지 않고, 설명하지 않고, 결론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 여백 속에 각자가 자기 이야기를 채워 넣는 겁니다. 저는 그 방식이 이제는 더 좋습니다.
넷플릭스에 두 편 다 있으니, 시간 되시는 날 한 편씩 꺼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커피 한 잔 옆에 두고, 핸드폰은 멀리 두고, 천천히 보시면 됩니다. 분명히 뭔가 남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