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범죄영화 연대기 정리
퇴직하고 나서 시간이 이렇게 느리게 갈 줄 몰랐습니다. 30년 동안 새벽같이 출근해서 야근하고, 주말에도 회사 생각하며 살았는데 막상 퇴직하니까 하루가 48시간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처음 한 달은 그냥 멍하니 TV만 봤습니다. 근데 막상 그것도 질리더군요.
그러다 문득 생각났습니다. 젊었을 때 정말 좋아했던 영화들. 특히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영화요. 20대 때 극장에서 봤던 그 전율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래서 지난 6개월간 스코세이지 감독의 범죄영화들을 처음부터 다시 정주행했습니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단순합니다.
같이 퇴직한 후배가 “형, 요즘 뭐하며 사세요?” 물어보길래 스코세이지 영화 얘기를 했더니 눈이 반짝거리더라고요. 본인도 한번 쭉 보고 싶은데 뭐부터 봐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정리해봤습니다. 58년 살면서, 30년 직장생활 하면서, 그리고 퇴직 후 6개월간 다시 보면서 느꼈던 것들을 말입니다.
📽️ 직접 다시 보니 달랐던 스코세이지의 세계
1970년대: 모든 것의 시작
사실 저도 처음엔 스코세이지 하면 ‘좋은 친구들’이나 ‘카지노’만 떠올랐습니다. 근데 정주행하면서 알게 됐는데, 진짜 시작은 1973년 ‘비열한 거리(Mean Streets)’였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이게 로버트 드 니로와 스코세이지의 첫 협업이었을 겁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금 기준으로 보면 좀 거칠어요. 촬영도 그렇고 편집도 그렇고. 근데 그 거친 맛이 있습니다. 뉴욕 뒷골목의 냄새가 화면에서 느껴지는 것 같달까요. 저도 80년대에 서울 변두리에서 고생하며 살았던 시절이 있는데, 묘하게 그때가 겹쳐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1976년, ‘택시 드라이버’가 나옵니다.
이건 범죄영화로 분류하기가 좀 애매한데, 그래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 VHS로 처음 봤을 때는 그냥 무섭고 이상한 영화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근데 퇴직하고 다시 보니까 완전히 다른 영화더라고요. 트래비스의 고독감이 이제야 이해가 됩니다. 30년간 회사에서 사람들에게 치이고, 퇴직하고 나니 연락하는 사람 거의 없고. 그 고립감이요. 물론 저는 총 들고 거리로 나갈 생각은 없습니다만.
1980년대: 범죄영화의 새 지평
‘분노의 주먹(1980)’은 엄밀히 말하면 복싱 영화입니다. 근데 저는 이것도 넓은 의미의 범죄영화라고 봅니다. 자기 자신에게 저지르는 범죄 같은 거요. 정확하진 않지만, 스코세이지가 이 시기에 개인적으로 많이 힘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영화에 그게 다 녹아 있어요.
흑백으로 찍은 건 처음엔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요즘 넷플릭스에서 컬러풀한 영상에 익숙해져 있으니까요. 근데 30분쯤 지나니까 흑백인 게 오히려 낫더라고요. 드 니로가 살 찌워서 연기하는 후반부, 컬러였으면 오히려 산만했을 것 같습니다.
1983년 ‘코미디의 왕’도 있는데, 이건 범죄영화라기보단 스릴러에 가까워서 일단 넘어가겠습니다. 근데 한번 보시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드 니로가 완전 다른 연기를 하거든요.
1990년대: 전성기의 시작
여기서부터입니다. 진짜 스코세이지 범죄영화의 꽃이 피는 시기가요.
1990년 ‘좋은 친구들(Goodfellas)’. 저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세 번 봤습니다. 그때 제가 30대 초반이었는데, 야근하다가 몰래 빠져나와서 봤던 기억이 납니다. 상사한테 걸렸으면 큰일 날 뻔했죠.
이 영화가 대단한 게 뭐냐면요. 갱스터 영화인데 갱스터들이 멋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처음엔 멋있어 보여요. 돈도 많고, 여자도 많고, 아무도 못 건드리고. 근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 사람들이 얼마나 비참한지 보여줍니다. 그 방식이 정말 천재적입니다.
특히 유명한 ‘코파카바나 롱테이크’ 장면 있잖아요. 레이 리오타가 여자친구 손잡고 클럽 뒷문으로 들어가서 주방 지나서 맨 앞자리까지 가는 장면. 3분 넘게 끊김 없이 찍은 건데, 저도 직장 다닐 때 가끔 그런 순간 있었거든요. 내가 잘나가는 것 같은 착각. 근데 그게 다 허상이더라고요. 영화도 결국 그걸 보여줍니다.
1995년 ‘카지노’는 ‘좋은 친구들’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라스베가스 배경이고 더 화려해졌는데, 개인적으로는 ‘좋은 친구들’보다 살짝 아래라고 봅니다. 이유는 나중에 아쉬웠던 점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2000년대 이후: 원숙의 경지
2002년 ‘갱스 오브 뉴욕’.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의 첫 작업입니다. 드 니로 시대가 가고 디카프리오 시대가 열린 거죠. 처음엔 좀 어색했어요. 디카프리오가 ‘타이타닉’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근데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완전히 영화를 집어삼킵니다. 그 연기 보는 것만으로도 본전 뽑습니다.
2006년 ‘디파티드’로 드디어 스코세이지가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습니다. 솔직히 좀 늦었죠. 많이 늦었습니다. ‘좋은 친구들’이나 ‘택시 드라이버’ 때 받았어야 했는데. 영화 자체는 홍콩 영화 ‘무간도’ 리메이크인데, 스코세이지 색깔이 확실히 입혀져 있습니다. 보스턴 아이리시 갱스터 이야기로 완전히 새로운 영화가 됐어요.
2013년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이건 전통적인 갱스터 영화는 아닙니다. 월스트리트 사기꾼 이야기죠. 근데 저는 이게 진짜 범죄영화라고 봅니다. 총 안 쏘고 사람 안 죽여도 이게 진짜 범죄거든요. 제가 직장 다닐 때 보면 이런 인간들 꽤 있었습니다. 영업팀에서 숫자 조작하고, 위에 보고는 번지르르하게 하고. 규모만 다르지 본질은 같아요.
그리고 2019년 ‘아이리시맨’.
이건 특별했습니다. 드 니로, 조 페시, 알 파치노. 이 세 명이 한 화면에 있는 거 자체가 기적 같더라고요. 저도 나이가 나이다 보니까 영화 속 인물들의 노년이 남 얘기 같지 않았습니다. 젊었을 때 잘나가던 사람들이 늙어서 외로워지는 거. 퇴직하고 나서 연락 뚝 끊긴 저랑 뭐가 다르겠습니까. 물론 저는 사람을 안 죽였지만요.
3시간 반짜리 영화인데,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끝나고 나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어요.
👍 좋았던 점: 왜 스코세이지인가
6개월간 정주행하면서 느낀 건데, 스코세이지 범죄영화의 진짜 매력은 ‘시간’입니다.
다른 감독들 범죄영화는 대부분 ‘사건’ 중심이에요. 은행털이, 마약거래, 누가 누굴 죽이고. 근데 스코세이지는 ‘시간’ 중심입니다. 한 인물이 젊었을 때부터 늙을 때까지 어떻게 변해가는지. 그래서 영화 보고 나면 마치 그 인물과 평생을 같이 산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또 하나 좋았던 건 음악 사용입니다. 스코세이지는 클래식 록을 정말 잘 씁니다. ‘좋은 친구들’에서 ‘레이라’ 피아노 아웃트로 나올 때 장면 있잖아요. 그 장면에서 음악이 빠지면 임팩트가 반도 안 됩니다. 제가 그 시절 음악 들으면서 자란 세대라 더 와닿는 것도 있고요.
그리고 배우들 연기요. 스코세이지 영화에 나온 배우들은 다 연기 인생 최고를 찍습니다. 드 니로도 그렇고, 조 페시도 그렇고, 레이 리오타도 그렇습니다. 뭔가 감독이 배우한테서 최고를 뽑아내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건, 이 영화들이 ‘삶’을 보여준다는 겁니다. 젊었을 때 보면 액션과 긴장감이 보이고, 나이 들어서 보면 인생과 후회가 보입니다. 같은 영화인데 볼 때마다 다른 영화가 됩니다. 그게 진짜 명작 아니겠습니까.
😔 아쉬웠던 점: 솔직히 말씀드리면
물론 다 좋은 건 아니었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첫째, 러닝타임이 너무 깁니다. ‘아이리시맨’ 3시간 반, ‘카지노’ 3시간,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3시간. 체력이 필요합니다. 저도 중간에 화장실 가느라 일시정지 여러 번 했습니다. 50대 넘으면 방광도 예전 같지 않거든요. 농담이 아니라 진짜 한 번에 보기 힘듭니다.
둘째, ‘카지노’는 ‘좋은 친구들’의 확장판 같은 느낌이 있어서 처음 보시는 분은 ‘좋은 친구들’하고 비교하게 됩니다. 제 생각엔 ‘좋은 친구들’을 먼저 보시고 한참 뒤에 ‘카지노’를 보시는 게 좋습니다. 너무 연달아 보면 좀 식상할 수 있어요. 저도 연달아 봤다가 ‘카지노’ 후반부에서 좀 지쳤거든요.
셋째, ‘갱스 오브 뉴욕’은 편집 문제가 좀 있습니다. 원래 4시간짜리였는데 2시간 40분으로 잘렸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중간중간 흐름이 좀 끊기는 느낌이 있습니다. 제작사랑 갈등이 있었다는 얘기도 있는데, 영화에서 그게 느껴집니다.
넷째, 여성 캐릭터가 좀 약합니다. 이건 스코세이지 영화 전반의 문제인데, 대부분 남자들 이야기고 여자는 주변부에 있습니다. 시대상을 반영한 거라고 볼 수도 있지만, 요즘 관점에서는 좀 아쉬운 부분입니다. 제 아내도 같이 보다가 이 점을 지적하더라고요.
다섯째, 폭력 묘사가 꽤 강합니다. 저야 젊었을 때부터 봐와서 무덤덤한데, 처음 보시는 분들은 좀 놀라실 수 있습니다. 특히 ‘좋은 친구들’이나 ‘카지노’ 일부 장면은 지금 봐도 꽤 강렬합니다.
❓ 자주 묻는 질문
Q1. 스코세이지 범죄영화 입문으로 뭘 먼저 봐야 하나요?
무조건 ‘좋은 친구들’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스코세이지 범죄영화의 모든 특징이 가장 균형 있게 들어가 있어요. 러닝타임도 2시간 반 정도로 그나마 적당하고, 스토리 전개도 깔끔합니다. ‘택시 드라이버’는 범죄영화라기보단 심리드라마에 가깝고, ‘아이리시맨’은 이전 작품들을 알아야 감동이 배가 됩니다. 처음이시라면 ‘좋은 친구들’부터 시작하시고, 마음에 드시면 ‘카지노’, 그다음 ‘아이리시맨’ 순서로 가시면 됩니다.
Q2. ‘아이리시맨’의 디에이징 기술이 어색하다던데 볼 만한가요?
솔직히 어색한 부분 있습니다. 특히 초반에 드 니로가 젊은 역할 할 때 얼굴은 젊어졌는데 몸동작이 70대 노인이에요. 계단 오르는 장면 같은 거 보면 딱 티 납니다. 근데요, 30분 지나면 익숙해집니다. 그리고 그 어색함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드 니로, 파치노, 페시 세 명의 연기가 압도적입니다. 저는 기술적 어색함 때문에 안 보신다면 진짜 손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특히 후반부 노년 파트는 아무 기술 없이 그냥 세 배우의 연기만으로 승부하는데, 그게 진짜 백미입니다.
Q3. 영화 순서대로 안 보고 띄엄띄엄 봐도 되나요?
됩니다. 각각 독립된 영화니까요. 근데 제가 정주행하면서 느낀 건, 순서대로 보면 감독의 성장이 보인다는 겁니다. ‘비열한 거리’의 거친 에너지가 ‘좋은 친구들’에서 세련되게 다듬어지고, ‘아이리시맨’에서 원숙해지는 과정이요. 시간 되시면 순서대로 보시길 권합니다. 물론 러닝타임 다 합치면 20시간 넘으니까 한 번에는 무리고, 한 달 정도 잡고 천천히 보시면 됩니다.
🎯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퇴직하고 갑자기 시간이 남아도는 분. 넷플릭스 뭐 볼지 모르겠어서 같은 거 반복해서 보시는 분. 젊었을 때 좋아했던 영화를 다시 보고 싶은데 계기가 없었던 분. 요즘 영화들이 너무 가볍게 느껴지시는 분.
특히 50대 이상 남성분들께 강력 추천합니다. 이유는요, 이 영화들이 결국 ‘시간’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젊었을 때의 야망, 중년의 위기, 노년의 후회. 우리가 살아온 길이 영화 속에 다 있습니다. 저도 ‘아이리시맨’ 보면서 괜히 제 인생 되돌아보게 됐어요. 뭔가 뭉클하더라고요.
반대로 액션 위주의 빠른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께는 좀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스코세이지 영화는 느립니다. 대화가 많고, 분위기로 끌고 갑니다. 마블 영화 같은 템포를 기대하시면 지루할 수 있어요.
✍️ 마무리하며
6개월간 스코세이지 범죄영화를 다시 보면서 느낀 게 있습니다.
명작은 시간이 지나도 명작입니다. 오히려 세월이 지나면 더 깊어집니다. 20대 때 봤던 ‘택시 드라이버’와 58세에 다시 본 ‘택시 드라이버’는 완전히 다른 영화였습니다. 그게 진짜 좋은 영화의 힘 아니겠습니까.
요즘 OTT가 발달해서 옛날 영화 보기 정말 좋아졌습니다. 넷플릭스에 ‘아이리시맨’ 있고, 왓챠나 쿠팡플레이에서 다른 작품들도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엔 비디오 빌려서 봐야 했는데 세상 참 좋아졌어요.
퇴직하고 뭐하며 시간 보내야 하나 고민이시라면, 영화 한번 제대로 파보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저는 스코세이지였는데, 다른 감독이어도 좋습니다. 히치콕이든, 구로사와든, 봉준호든. 한 감독 영화를 쭉 보다 보면 그 사람의 세계관이 보이고, 그러다 보면 내 인생도 되돌아보게 됩니다.
다음엔 어떤 감독을 파볼까 고민 중입니다. 코엔 형제 영화도 다시 보고 싶고, 쿠엔틴 타란티노도 끌리고. 시간은 많으니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스코세이지 영화 보시고 느낌 공유하고 싶으시면 언제든 댓글 남겨주세요. 퇴직한 선배로서 영화 얘기는 언제든 환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