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이라 불리지만 솔직히 지루했던 영화들 고백

🎬 퇴직하고 나서야 솔직해졌습니다

이 글을 쓰게 된 건 솔직히 좀 부끄러운 계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동네 독서모임에서 영화 이야기가 나왔는데, 누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진짜 명작이죠?” 하고 물어보더군요. 저는 반사적으로 “그럼요, 대단하죠” 하고 답했습니다. 근데 집에 오는 길에 혼자 생각해봤어요. 나 그 영화 보면서 두 번 졸았는데. 한 번은 거의 잠들 뻔했는데. 왜 나는 “명작이죠”라고 말했을까. 30년 넘게 직장 다니면서 몸에 밴 습관 같은 게 있거든요. 윗사람 말에 일단 맞장구치는 것. 그게 퇴직하고도 남아있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엔 제대로 털어놓으려 합니다. 저 같은 평범한 중년 남자가 명작이라는 소리 듣고 봤다가 솔직히 지루했던 영화들. 욕먹을 각오하고 씁니다.

🛸 우주선 안에서 저만 졸았던 걸까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습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처음 이 영화를 본 게 퇴직 직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인이 “꼭 봐야 한다”고 해서 주말 낮에 혼자 앉아서 틀었어요.

처음엔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화면이 아름다웠으니까요. 근데 30분이 지나도 별로 이야기가 없어요. 원숭이들이 뼈다귀 들고 다니다가 갑자기 우주로 넘어가고. 우주선 안에서는 사람들이 밥 먹고, 걷고, 또 걷고. HAL 9000이 나오기 전까지 저는 거의 의식이 반쯤 나가 있었습니다. HAL 나오고 나서야 “아, 이제 뭔가 되는구나” 싶었는데 거기서 또 끝나더군요. 마지막 장면은 지금도 제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이 영화가 얼마나 혁신적이었는지, 철학적으로 얼마나 깊은지 설명하는 글들을 읽었습니다. 다 읽고 나서 “아, 그런 영화구나” 싶었어요. 근데 그게 문제 아닌가요. 영화 보는 데 설명서가 필요하다면.

🎻 예술인지 수면제인지 모르겠던 영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 영화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솔라리스를 먼저 봤고, 그 다음에 스토커를 봤습니다. 두 편 다 명작 리스트에 항상 올라오는 작품들이잖아요.

솔직히 말할게요. 스토커 보다가 실제로 잠들었습니다. 그것도 두 번. 영화 속 인물들이 그 긴 풀숲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가는 장면이 있는데, 저는 그 장면이 시작되는 순간 눈꺼풀이 내려왔습니다. 일어나서 세수하고 다시 봤어요. 또 졸았습니다.

나중에 타르코프스키 감독이 “시간을 조각하는 감독”이라는 말을 읽었는데, 저는 그 말이 너무 잘 이해됐습니다. 시간을 조각하긴 하는데, 제 수면 시간도 같이 조각해버리더라고요. 이건 진짜 웃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이 영화를 세 번 도전해서 한 번 완주했습니다. 그것도 억지로.

😐 좋았던 점, 진짜로 있긴 했습니다

비판만 하면 공정하지 않으니까, 좋았던 점도 솔직하게 말해야겠습니다.

  • 화면이 주는 감각: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큰 화면으로 보면 진짜 압도됩니다. 제가 졸기 전 그 30분은 진심으로 넋 놓고 봤습니다. 저 같은 평범한 사람도 “우주가 이렇게 생겼구나” 하는 느낌이 오더군요.
  • 오래 남는 장면들: 지루하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며칠 지나면 특정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떠납니다. 잘 만든 광고처럼요. 보는 순간엔 지루한데 나중에 기억에 남는 영화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 대화 소재로는 최고: 퇴직 후 시간 많이 생기면서 영화 모임 같은 데 나가게 됐는데, 이런 명작들 봐둬야 대화가 됩니다. 나만 모르면 겉도는 느낌이 나거든요.

😓 아쉬웠던 점, 이건 정말 솔직하게

근데 이게 저의 진짜 불만입니다. 이런 영화들 주변에 일종의 ‘말 못 할 분위기’가 있어요. 지루했다고 하면 마치 내가 교양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분위기요. 저는 그게 제일 불편했습니다.

30년 직장생활 하면서 이런 분위기 정말 많이 겪었습니다. 대표이사가 좋아하는 거면 다들 좋다고 해야 하는 분위기. 그거랑 뭐가 다른가요. 영화도 마찬가지더라고요. 비평가들이 만장일치로 명작이라 하면, 일반 관객은 슬그머니 “저도 감동받았어요”라고 해야 하는 분위기.

두 번째 아쉬운 점은 진입 장벽 이야기를 아무도 안 해준다는 겁니다. 이런 영화들은 어느 정도 배경지식이 있어야 즐길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근데 추천하는 사람들은 그냥 “봐, 명작이야”라고만 해요. 저처럼 아무 정보 없이 봤다가 허탕 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처음부터 “이런 배경으로 보면 더 잘 보인다”고 알려줬다면 제 감상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습니다.

🙋 자주 나오는 질문들, 제 경험으로 답해봅니다

Q. 그럼 이런 영화들은 볼 가치가 없는 건가요?

그런 말은 아닙니다. 저처럼 지루했다고 해서 영화 자체가 나쁜 건 아니에요. 다만 저한테는 안 맞았던 겁니다. 취향이 다른 거죠. 명작이라는 말이 “모든 사람이 재미있게 봐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Q. 중간에 끄고 싶을 때 어떻게 하셨나요?

저는 처음엔 억지로 끝까지 봤습니다. 명작인데 내가 이해를 못 하나 싶어서요. 근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요. 30분 봐서 안 당기면 그냥 꺼도 됩니다. 퇴직하고 나서야 이게 됩니다. 직장 다닐 때는 끝까지 봐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냥 “나한테 안 맞는 영화구나” 하고 넘어갑니다. 솔직히 그게 더 건강한 것 같습니다.

Q. 그럼 어떤 사람한테 이런 영화를 추천하시겠어요?

영화를 스토리 중심이 아니라 감각이나 철학으로 즐기는 분들한테 맞습니다. 또, 혼자 조용히 생각 정리하고 싶은 날 보면 의외로 잘 맞더라고요. 저도 스토커를 세 번째 도전할 땐 “그냥 흘려보내자” 하고 봤더니 오히려 좀 다른 느낌이 왔습니다. 완주는 했으니까요.

✍️ 마무리하면서

퇴직하고 나서 시간이 생기니까 영화를 많이 보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느낀 게, 저는 오랫동안 영화에 대해 솔직한 감상보다 ‘맞는 말’을 먼저 골랐던 것 같습니다. 명작이라 하면 명작이라 해야 했고, 좋다고 하면 좋다고 해야 했습니다.

근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잖아요. 저한테 지루했으면 지루했던 겁니다. 그게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왜 나는 이 영화가 지루했을까”를 생각하는 게 영화를 더 깊이 보는 방법일 수도 있다고 요즘은 생각합니다.

이 글 읽고 혹시 “나도 그 영화 지루했는데 말 못 했어”라고 느끼는 분이 있다면, 그냥 같이 솔직해지자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이제 그 나이 됐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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