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작품을 순서대로 봐야 하는 이유

크리스토퍼 놀란

🎬 퇴직하고 나서야 비로소 제대로 본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솔직히 말하면, 저 오래 전부터 놀란 영화를 “봤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장 다닐 때도 인터스텔라 봤고, 다크나이트도 봤고, 인셉션도 봤습니다. 근데 막상 퇴직하고 나서 시간이 생겨 처음부터 순서대로 다시 보기 시작했는데… 그제야 알았습니다. 그동안 제가 놀란 영화를 “본 게 아니라 틀어놓은 것”이었다는 걸요.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사실 아주 사소했습니다. 퇴직 후 무료함을 달래려고 큰아들한테 “요즘 볼 만한 거 없냐”고 물었더니, 아들이 한숨을 쉬면서 “아버지, 놀란 감독 작품 처음부터 순서대로 한번 다 보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냥 흘려들을 수도 있었는데, 어쩌다 첫 번째 작품을 틀었다가… 결국 한 달 동안 거의 매일 한 편씩 봤습니다. 이건 그 경험의 기록입니다.

📽️ 처음부터 순서대로 보기 시작했더니 달랐습니다

놀란 감독의 첫 장편 작품부터 시작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흑백으로 찍은 저예산 영화였는데 처음에는 솔직히 “이게 뭐야” 싶었습니다. 화면도 거칠고, 배우들도 낯설고. 30분쯤 보다가 잠깐 껐습니다. 다음날 다시 켰는데 그때부터 뭔가 달라졌습니다.

그 영화에서 시간과 기억을 다루는 방식, 관객을 의도적으로 혼란스럽게 만드는 구조… 그게 이후 작품들에서 계속 반복되고 발전된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만약 제가 인셉션부터 봤다면? 그냥 “신기한 꿈 영화”로 끝났을 겁니다. 근데 첫 작품부터 보고 나서 인셉션을 다시 보니까, 이 감독이 얼마나 오랫동안 같은 주제를 갈고 닦아왔는지가 보였습니다. 그 느낌이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메멘토에 와서는 진짜 충격이었습니다. 직장생활 30년 하면서 저도 기억이라는 게 얼마나 불완전한지, 내가 기억하는 것과 실제로 있었던 일이 얼마나 다른지를 뼈저리게 경험했거든요. 억울하게 오해받은 적도 있었고, 반대로 내가 잘못 기억해서 민망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메멘토의 주인공이 단순히 “기억을 못 하는 캐릭터”가 아니라, 어떻게든 자기 서사를 지키려는 인간처럼 느껴졌습니다. 이건 나이가 좀 들어야, 그리고 순서대로 봐야 느낄 수 있는 감각인 것 같습니다.

✨ 순서대로 보면서 좋았던 점들

가장 좋았던 건 “감독의 성장을 함께 걷는 느낌”이었습니다. 초기작의 어설픔이, 이후 작품에서 어떻게 세련되게 발전하는지를 눈으로 확인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마치 오랜 친구가 서툴렀다가 점점 단단해지는 걸 옆에서 지켜보는 것 같다고 할까요.

  • 주제의 일관성이 보입니다. 시간, 기억, 정체성. 놀란은 거의 모든 작품에서 이 세 가지를 붙잡고 씨름합니다. 순서대로 보면 그 집착이 얼마나 끈질긴지가 보입니다.
  • 다크나이트 시리즈가 다르게 읽힙니다. 그냥 배트맨 영화가 아니라, 놀란이 영웅과 악인의 경계, 신념의 한계를 어떻게 탐구하는지가 이전 작품들과 연결되어 느껴집니다.
  • 인터스텔라의 감동이 배가됩니다. 저는 인터스텔라를 처음 봤을 때 그냥 “우주 영화, 좀 감동적이네” 정도였습니다. 근데 순서대로 보고 다시 보니 이 감독이 얼마나 오래 “사랑이 시간을 초월하는가”라는 질문을 했는지가 보여서… 사실 좀 울었습니다. 남자 나이 오십 넘어서 영화 보다 우는 게 쑥스럽긴 했지만요.

그리고 하나 더. 정확하진 않지만, 놀란 영화는 볼 때마다 “이게 다 계획된 건가?” 싶은 장면들이 있습니다. 순서대로 보면 그 치밀함이 감독 개인의 스타일로 자리잡아 가는 과정이 느껴집니다. 그게 묘하게 짜릿합니다.

😅 솔직히 아쉬웠던 점도 있습니다

좋은 것만 얘기하면 거짓말이 되니까,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감정적으로 차갑습니다. 놀란 영화는 머리를 굉장히 많이 쓰게 만드는데, 반대로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런 감동은 상대적으로 덜합니다. 제 아내는 인터스텔라 보다가 중간에 잠들었습니다. “너무 설명이 많고 감정이 없다”고 했는데, 저는 처음엔 이해 못 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틀린 말도 아닙니다. 감정보다 구조가 앞서는 영화들이다 보니, 감정 이입을 원하는 분들한테는 피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초기작 몇 편은 “이걸 꼭 봐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영상미나 완성도가 후기작에 비해 많이 떨어지거든요. 순서대로 보는 게 의미 있다고 했지만, 처음 두어 편에서 흥미를 잃고 포기하는 분들도 분명 있을 겁니다. 그 부분은 각오하고 시작하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혼자 보기 좋은 영화들입니다. 같이 보다 보면 한 명이 “이게 무슨 뜻이야?”라고 물어보는 순간 흐름이 깨집니다. 저도 처음엔 아내랑 같이 보려다가 결국 혼자 이어폰 끼고 보게 됐습니다. 그게 오히려 더 잘 맞긴 했습니다만.

❓ 자주 받는 질문들, 제 경험으로 답해드립니다

Q. 순서대로 안 봐도 되지 않나요? 유명한 것만 봐도 되지 않나요?

물론 그래도 됩니다. 근데 제가 그렇게 했다가 나중에 순서대로 다시 보니까 아쉬웠습니다. 인셉션이나 인터스텔라를 이미 봤어도 한번 처음으로 돌아가서 순서대로 보시면 분명히 다르게 보이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이미 아는 결말로 다시 보는 재미, 그게 또 놀란 영화의 묘미입니다.

Q. 몇 편이나 되나요? 다 보려면 얼마나 걸려요?

제 기억이 맞다면 장편만 열 편 넘게 됩니다. 저는 한 달 정도 걸렸는데, 하루에 한 편씩 보기에 딱 좋은 분량이었습니다. 각 편이 두 시간 넘는 것들이 많아서 하루에 몰아보긴 힘들고, 오히려 하루에 한 편 보고 하룻밤 생각하고 다음 편 보는 리듬이 좋았습니다.

Q. 영화를 많이 안 본 사람도 즐길 수 있나요?

솔직히 좀 어렵습니다. 놀란 영화는 영화 자체를 즐기는 습관이 어느 정도 있는 분들한테 더 잘 맞습니다. 완전 초보자분들한테는 처음에 진입 장벽이 꽤 높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도전해보고 싶다면, 메멘토부터 시작하는 걸 권해드립니다. 짧고, 임팩트가 있고, 놀란의 핵심이 다 담겨 있습니다.

🎞️ 마무리하며,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퇴직하고 시간이 생긴 분들, 영화를 진지하게 한번 파보고 싶은 분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분들한테 진심으로 추천합니다. 특히 30~40년 사회생활 하면서 “내가 뭘 믿고 살아왔나” 하는 생각을 해본 적 있는 분들이라면, 놀란의 주제 의식이 생각보다 깊이 꽂힐 겁니다.

저는 지금도 한 편씩 다시 보고 있습니다. 같은 영화인데 볼 때마다 다른 장면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게 좋은 영화의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랜 친구한테 이야기하듯 썼는데, 부디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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