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앨런 영화에서 뉴욕이 주인공이 되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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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디 앨런 영화에서 뉴욕이 주인공이 되는 방식

퇴직하고 나서 처음 몇 달은 솔직히 뭘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30년을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출근했던 사람이 갑자기 아무 데도 갈 곳이 없어지니까요. 그러다 자연스럽게 영화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한 편, 많으면 두 편. 그렇게 영화가 제 일상이 됐습니다.

우디 앨런을 본격적으로 보게 된 건, 한 지인이 “뉴욕 영화 좋아하면 맨해튼 한번 봐라”고 해서였습니다. 근데 막상 보니까 뭔가 이상한 겁니다. 분명 사람 이야기인데, 자꾸 도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이후로 우디 앨런 영화를 쭉 챙겨 보면서 뭔가를 비교하게 됐습니다. 같은 뉴욕을 배경으로 한 다른 감독들 영화와 우디 앨런 영화가, 같은 도시를 전혀 다르게 쓰고 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입니다.

🏙️ 일반적인 뉴욕 영화 — 도시는 그냥 배경입니다

제가 우디 앨런을 보기 전에 봤던 뉴욕 배경 영화들, 예를 들면 액션 영화나 로맨틱 코미디 같은 것들 말입니다. 거기서 뉴욕은 그냥 ‘배경’이었습니다. 택시가 지나가고, 마천루가 보이고, 센트럴파크에서 주인공들이 마주치는 식이었습니다. 뉴욕이 아니라 다른 대도시였어도 이야기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도시가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건 맞는데, 이야기를 이끌지는 않습니다. 캐릭터가 뉴욕에 사는 이유는, 그냥 그 캐릭터의 이야기가 뉴욕에서 일어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논리가 역방향인 셈입니다. 사람이 먼저고, 도시는 나중인 구조입니다.

사실 저도 처음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에서 도시가 뭘 더 할 수 있겠냐 싶었으니까요. 배경은 배경이지. 그런데 우디 앨런을 보고 나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 우디 앨런의 뉴욕 — 도시가 먼저 말을 겁니다

우디 앨런 영화에서 뉴욕은 단순히 배경이 아닙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맨해튼 오프닝 장면이 그걸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대사도 없고, 주인공도 안 나옵니다. 그냥 뉴욕의 풍경이 흘러갑니다. 거슈윈의 음악이랑 같이. 그런데 그 장면만으로 이미 이 영화가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느껴집니다. 뉴욕에 대한 사랑, 집착, 이상화. 그 모든 게 도시 화면 하나에 담겨 있습니다.

우디 앨런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은 뉴욕 때문에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합니다. 그들이 걷는 거리, 앉는 카페, 산책하는 다리 위, 이런 것들이 단순한 장소가 아닙니다. 캐릭터의 내면을 대신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우울한 인물은 비 오는 날 뉴욕 골목을 걷고, 낭만적인 감정에 빠진 인물은 브루클린 브리지 위에 섭니다. 날씨도, 빛도, 계절도 다 계산되어 있습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우디 앨런은 인터뷰에서 “뉴욕이 없으면 내 영화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말이 단순한 애향심이 아니라는 걸, 영화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 두 방식을 비교하며 느낀 결정적인 차이

제가 직접 느낀 가장 큰 차이는 이겁니다. 일반적인 뉴욕 영화를 볼 때는 영화가 끝나도 뉴욕이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인물이 기억납니다. 근데 우디 앨런 영화는 반대입니다. 인물보다 그 인물이 서 있던 공간이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직장생활 오래 하면서 저도 출장으로 도시를 많이 다녔습니다. 그때 느꼈던 건, 도시마다 분명히 다른 ‘온도’ 같은 게 있다는 겁니다. 서울의 새벽 4시와 뉴욕의 새벽 4시는 공기부터 다를 것 같은 느낌. 우디 앨런은 그 온도를 영화 안에 그대로 담아냅니다. 반면 다른 감독들은 뉴욕을 촬영 장소로 사용하되, 그 온도까지는 잡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한 가지. 우디 앨런 영화에서 뉴욕은 가끔 인물과 갈등하기도 합니다. 이 도시에 살고 싶다는 욕망과, 이 도시가 자신을 갉아먹고 있다는 불안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그게 굉장히 솔직하게 느껴졌습니다. 도시를 낭만화하면서도 그 낭만이 얼마나 허구에 가까운지를 동시에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이건 다른 감독 영화에서는 잘 못 본 것 같습니다.

🤔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우디 앨런 방식이 완벽하다고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솔직히 좀 불편했던 부분도 있었습니다. 뉴욕을 너무 이상화하다 보니, 그 뉴욕이 굉장히 좁은 뉴욕이라는 겁니다. 어퍼 이스트 사이드, 아트 갤러리, 재즈바, 지식인들의 디너 파티. 이런 뉴욕만 반복해서 나옵니다. 브롱크스도, 이민자 거리도, 진짜 서민들의 뉴욕도 거의 안 나옵니다.

처음엔 몰랐는데, 몇 편 연속으로 보다 보니 그 편향이 눈에 밟혔습니다. 우디 앨런이 사랑하는 뉴욕은 결국 그가 살고 싶은 뉴욕, 그가 상상한 뉴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시를 주인공으로 만들긴 하는데, 그 주인공이 실제 뉴욕의 전부를 대변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분명히 한계로 보였습니다.

🎯 어떤 분께 어떤 방식이 맞는지

도시 배경이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편안하게 보고 싶은 분들께는, 일반적인 방식의 뉴욕 영화가 더 편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 흐름에 집중하기 좋고, 뉴욕이 주는 시각적 쾌감도 충분히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도시 자체를 하나의 감정으로 느끼고 싶은 분들, 영화를 보고 나서 그 공간 속에 한동안 머물고 싶다는 기분을 원하는 분들이라면 우디 앨런 방식이 훨씬 잘 맞을 것입니다. 특히 퇴직 후 시간이 생겨서 한 편 한 편 천천히 곱씹으며 보고 싶다는 분들께는, 제 경험상 우디 앨런 뉴욕 영화가 꽤 좋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

✍️ 마무리하며

30년 직장생활 동안 저는 늘 ‘도구’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회사에 필요한 사람. 역할이 있는 사람. 퇴직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그냥 존재 자체로 어딘가에 있어도 된다는 걸 느꼈습니다. 우디 앨런 영화에서 뉴욕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거기 있는 것입니다. 숨 쉬고, 말 걸고, 가끔은 상처 주기도 하면서요.

뉴욕이 주인공이 된다는 게 처음엔 좀 과장된 표현처럼 들렸습니다. 근데 지금은 그 말이 제일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디 앨런 영화에서 뉴욕은 정말로 주인공입니다. 그냥 큰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를 시작하고 끝내는 존재입니다. 한 번도 그런 시선으로 도시를 바라본 적 없었다면, 한 편만 골라서 천천히 봐 보시길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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