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퇴직하고 나서야 생긴 취미, 그리고 뼈아픈 실망
30년 넘게 직장 다니면서 영화관을 제대로 가본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주말엔 피곤하고, 평일엔 야근이고. 그러다 퇴직하고 나서 처음 몇 달은 솔직히 뭘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집에서 멍하니 있었습니다. 아내가 “당신 이러다 우울증 온다”고 해서 그때부터 OTT 구독하고, 영화관 주중 할인 찾아다니고, 본격적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시작을 어디서 해야 할지 몰라서, 처음엔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목록을 찾아다 쭉 봤습니다. 이거면 틀림없겠다 싶었거든요. “아카데미 수상작이면 명작 아니겠어?” 하는 마음으로. 사실 저도 처음엔 그게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근데 막상 보니까, 아니더라고요. 몇몇 작품은 정말 “이게 왜 작품상이지?” 싶을 만큼 제 기대와 달랐습니다. 물론 제가 영화 전문가도 아니고, 그냥 평범하게 살다 퇴직한 58세 아저씨입니다. 근데 그래서 오히려 솔직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평가 눈치 볼 필요가 없으니까요.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단순합니다. 동네 친구 모임에서 영화 얘기를 하다가, “아카데미 수상작이면 다 좋은 거 아니야?” 하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처럼 실망한 경험을 솔직하게 써두면 도움이 되는 사람이 있겠다 싶었습니다. 오랜 친구한테 영화 얘기 털어놓듯이, 한번 써보겠습니다.
🎥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던 영화들
첫 번째 영화 — 크래쉬 (Crash)
제 기억이 맞다면, 이 영화 받았을 때 엄청 논란이 됐었습니다. 당시 저는 직장 다닐 때라 뉴스로만 접했는데, 퇴직 후에 드디어 봤습니다. OTT에서 찾아서, 오후 내내 시간 비워두고 진지하게 봤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 한 시간은 꽤 흥미로웠습니다. 여러 인물들이 얽히는 방식이 신선했고, 인종 갈등 주제도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근데 후반부로 갈수록 뭔가 어색했습니다. 너무 “교훈을 주려는 느낌”이 노골적으로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 같았고, 실제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30년 직장생활 하다 보면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납니다. 좋기만 한 사람도 없고, 나쁘기만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게 현실이잖아요. 근데 이 영화는 그 복잡한 인간을 너무 깔끔하게 포장해버린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쁜 사람도 알고 보면 사연 있어요”를 너무 노골적으로 설명해주려다 보니, 오히려 설득력이 떨어졌습니다.
영화 끝나고 나서 뭔가 찜찜한 기분이 남았습니다. 감동을 받은 건지, 감동을 강요당한 건지 구분이 안 되는 느낌이랄까요. 아내한테 “이게 작품상 탄 거야?” 했더니 아내도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두 번째 영화 — 포레스트 검프 (Forrest Gump)
이건 좀 다른 맥락입니다. 워낙 유명한 영화고, 저도 진짜 기대 많이 하고 봤습니다. “초콜릿 상자” 대사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봤으니까요. 드디어 앉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봤을 때, 제 반응은… 음.
나쁘진 않았습니다. 솔직히 중간중간 울컥하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장면은 나이 들어서 보니까 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근데 전체적으로 보면, 뭔가 너무 동화 같다는 생각이 내내 따라다녔습니다.
제가 살아온 58년을 돌아보면, 세상이 저렇게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착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는 메시지가 기분 나쁜 건 아닌데, 너무 반복적으로, 너무 착착 맞아떨어지니까 현실감이 사라지더라고요. 게다가 제니 캐릭터가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정확히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 인물이 너무 포레스트를 빛나게 해주기 위한 도구처럼 느껴졌습니다. 제니가 겪는 고통이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는 것 같아서 불편했습니다.
명작이라고 모두가 말하는 영화를 보고 “흠…” 하고 있자니, 내가 뭔가 놓친 건지 싶어서 검색도 해봤습니다. 근데 비슷하게 느낀 사람이 꽤 있더라고요. 그게 조금 위안이 됐습니다.
세 번째 영화 — 영국왕의 연설 (The King’s Speech)
이건 정말 기대를 많이 했습니다. 영국 왕실 이야기에 말더듬 치료라는 소재, 콜린 퍼스까지. 다 갖춰진 것 같았습니다. 퇴직 직후에 혼자 집에서 오전부터 여유롭게 봤습니다.
보는 내내 ‘괜찮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배우들 연기도 훌륭하고, 화면도 예쁘고, 대사도 좋았습니다. 근데 다 보고 나서 뭔가 빠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너무 안전했습니다. 영화 내내 위험한 순간이 없었달까요. 처음부터 끝까지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만 흘러갔고, 클라이맥스도 “그래, 이렇게 되겠지” 하고 기다리던 대로 왔습니다.
직장생활 30년 하다 보면 ‘무난하다’는 게 꼭 좋은 말이 아닐 때가 있다는 걸 압니다. 무난한 직원이 중요한 일 맡기 어렵듯이, 무난한 영화는 수상작으로서 뭔가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해 경쟁작들이 어땠는지는 제가 다 본 건 아니라서 비교는 못 하겠지만, 이 영화 혼자 봤을 때 ‘작품상’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리는지는 솔직히 의문이었습니다.
👍 그래도 좋았던 점들
이렇게 실망 얘기만 하면 억울한 면도 있습니다. 그래도 건질 게 있었으니까요.
- 크래쉬는 처음 절반만큼은 진짜 긴장감 있었습니다. 여러 인물이 얽히는 구성은 흥미로웠고, 배우들 연기는 나무랄 데 없었습니다. 특히 매트 딜런 연기는 기억에 남았습니다.
- 포레스트 검프는 톰 행크스라는 배우의 힘을 새삼 느꼈습니다. 어떤 장면에서는 정말 포레스트가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 같았습니다. 그 연기력만큼은 논란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 영국왕의 연설은 두 주인공의 우정 묘사가 따뜻했습니다. 나이 들어서 보니까 그 우정이 더 와닿더라고요. 서로 다른 처지에 있지만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 소박하게 좋았습니다.
아카데미 수상작이라는 타이틀 자체가 완전히 틀린 건 아닙니다. 다만 제 취향과 맞지 않거나,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탓도 있었을 겁니다. 그 점은 인정합니다.
😤 아쉬웠던 점, 솔직하게
가장 크게 아쉬운 건, 이 영화들 중 상당수가 “안전한 감동”을 노린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는 겁니다. 논란 없이, 모두가 고개 끄덕일 수 있는 방향으로 만든 느낌. 아카데미라는 시상식의 성격상 그런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까 그게 느껴졌습니다.
또 한 가지. 이 영화들을 보고 나서 제 일상이 달라지거나, 뭔가를 새롭게 생각하게 된 게 별로 없었습니다. 퇴직하고 나서 시간 많아진 김에 영화를 보기 시작한 이유가, 그동안 못 느꼈던 것들을 좀 느껴보고 싶어서였습니다. 근데 이 영화들은 끝나고 나서 “그래, 봤다” 하는 느낌이랄까요. 뭔가 마음속에 오래 남는 게 적었습니다.
물론 이건 지극히 제 개인 감상입니다. 같은 영화를 보고 펑펑 운 친구도 있었습니다. 사람마다 다 다른 거니까, 제 말이 정답은 아닙니다. 다만 “아카데미 수상작이니까 무조건 감동적이겠지”라는 기대는 조심하는 게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제가 본 아카데미 수상작 중에 오히려 기대 없이 봤다가 크게 감동받은 영화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기대치를 조절하는 것 자체가 영화 보는 기술이 아닐까 싶습니다.
❓ 자주 받는 질문들
Q. 아카데미 수상작이면 다 봐도 되는 건가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처럼 30년 넘게 영화 제대로 못 봤다가 이제 보기 시작한 분이라면, 아카데미 목록이 하나의 출발점은 될 수 있습니다. 근데 그게 절대적인 기준은 아닙니다. 수상작 중에도 취향을 타는 게 많고, 수상 못 한 영화 중에 개인적으로 훨씬 더 좋아하는 작품들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리스트는 참고용으로만 쓰시고, 직접 보면서 자기 취향을 찾아가는 게 낫습니다.
Q. 나이 들어서 영화 보는 게 젊을 때랑 다른가요?
많이 다릅니다. 이건 제가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젊을 때는 액션이나 긴장감 넘치는 장면이 좋았는데, 지금은 사람 사이의 관계나 시간의 흐름을 다루는 영화가 더 와닿습니다. 포레스트 검프에서 어머니 돌아가시는 장면이 그렇게 마음에 걸릴 줄 몰랐습니다. 나이가 들면 영화 보는 감각도 바뀐다는 걸 직접 느끼고 있습니다.
Q. 그럼 어떤 영화를 추천하시나요?
실망한 이야기만 했으니 이건 살짝 답하겠습니다. 저처럼 퇴직 후에 여유롭게 영화 보기 시작하신 분이라면, 너무 유명한 작품보다 조용히 알려진 작품부터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기대치가 낮을수록 더 좋은 영화를 발견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영화 선택은 맛집 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줄 서서 들어간 집이 항상 제일 맛있는 건 아니잖아요.
✍️ 마무리하며
이 글을 쓰면서 새삼 느낀 게 있습니다. 퇴직하고 처음 영화 보기 시작할 때 “유명한 것부터 보자”는 생각으로 아카데미 목록을 뒤진 게, 사실은 제가 아직 스스로 선택하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였던 것 같습니다. 30년 직장생활 동안 늘 주어진 일을 했으니까요. 영화 선택도 누군가가 검증해준 것에 기대고 싶었던 거죠.
근데 막상 보고 나서 느낀 건, 영화는 결국 자기 감각으로 골라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권위 있는 상을 받았어도, 내가 공감 못 하면 그냥 긴 영상 하나 본 것에 불과합니다. 반대로 아무도 추천 안 해줘도 혼자 우연히 골라서 본 영화가 며칠 동안 머릿속을 맴도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오늘 이 글은 “아카데미 수상작은 다 별로다”를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그냥, 이 아저씨가 보고 솔직하게 실망했던 경험을 나눠드린 겁니다. 영화 보는 재미는 각자 다르고,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이 글이 “나만 이 영화가 별로였나?” 하고 의아했던 분께 작은 위안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오후에 영화 한 편 볼 생각입니다. 뭘 볼지는 아직 모릅니다. 그냥 눈에 띄는 걸로 골라볼 생각입니다. 그게 요즘 제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