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 영화를 순서대로 보면 보이는 것들

봉준호 감독

🎬 퇴직하고 나서야 봉준호 감독 영화를 처음부터 다시 봤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 오래전부터 봉준호 감독 영화 봤다고 생각했습니다. 극장에서 몇 편 봤고, TV에서 하면 또 봤고. 근데 퇴직하고 나서 시간이 갑자기 많아지니까, 뭔가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처음 영화부터 순서대로 전부 다 보기로 했습니다.

처음엔 별 생각 없이 시작했습니다. ‘어, 나 이미 다 봤는데 뭐 새로 나오겠어’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순서대로 쭉 보니까, 이건 그냥 영화 여러 편 보는 게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시선이 어떻게 변하고 또 어떻게 일관되는지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경험이 꽤 묵직해서 이 글을 쓰게 됐습니다.

🎞️ 순서대로 보니까 처음엔 몰랐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영화를 본 순서는 첫 장편부터 가장 최근 작품까지였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첫 장편인 플란다스의 개부터 시작해서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 설국열차, 옥자, 기생충, 그다음 미키 17까지 순서대로 봤습니다. 하루에 한 편씩 보기도 했고, 어떤 날은 두 편 연달아 보기도 했습니다.

처음 두 편쯤은 ‘아, 이거 그냥 한국 영화구나’ 싶었습니다. 근데 세 편, 네 편 넘어가면서부터 뭔가 느낌이 달라졌습니다. 공통점이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봉준호 감독 영화엔 항상 어딘가 묘하게 웃긴 장면이 있는데, 그 웃음 바로 뒤에 되게 불편한 무언가가 따라옵니다. 처음엔 그냥 연출 특징인가 보다 했습니다. 근데 몇 편 더 보니까, 이게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라 그 감독이 세상을 보는 방식이더라고요. 웃기면서도 무섭고, 재미있으면서도 씁쓸한 것. 30년 직장 생활하면서 저도 비슷한 감각을 매일 겪었거든요. 회식에서 웃고 떠들다가 집에 오는 길에 왜인지 공허한 그 느낌. 그래서인지 유독 와닿았습니다.

또 하나. 봉준호 감독 영화에는 항상 계단이 나옵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제가 보면서 세어봤더니 거의 모든 작품에 계단이 중요한 장면에 등장합니다. 올라가는 장면이 있으면 반드시 내려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기생충에서 그 반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유명하지만, 사실 다른 작품에서도 계속 그 이미지가 반복됩니다. 이걸 순서대로 보지 않았으면 절대 몰랐을 겁니다.

👍 좋았던 점, 진짜로 좋았던 것들

가장 좋았던 건 감독의 성장이 눈에 보인다는 겁니다. 첫 작품은 솔직히 좀 거칩니다. 재능은 있는데 뭔가 날 것의 느낌이랄까요. 근데 작품마다 카메라가 더 자신 있어지고, 이야기가 더 담백해집니다. 군더더기가 줄어드는 게 느껴집니다. 이게 그냥 ‘나중에 잘 됐다’는 결과만 아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살인의 추억을 볼 때는 제가 직장 다니던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열심히 하는데 뭔가 계속 어긋나는 형사들을 보면서, 아 저거 나잖아 싶었습니다.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없을 때 그 허탈함. 그 영화는 진짜 한 번 보고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괴물은 가족 이야기인데, 막내딸을 지키려고 온 가족이 우왕좌왕 뛰어다니는 모습이 너무 현실적이었습니다. 영웅이 없는 구조. 다들 조금씩 무능하고 조금씩 용감합니다. 저도 아이 키울 때 그랬거든요. 완벽하진 않지만 어떻게든 해보려는 그 마음. 그게 그대로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생충. 이미 봤었는데 순서대로 다 보고 나서 다시 보니까 완전히 다르게 보였습니다. 전에 볼 땐 그냥 ‘잘 만든 스릴러’ 정도였는데, 이번엔 감독이 처음부터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구나 싶었습니다. 계단, 냄새, 반지하, 지하. 이 모든 게 그냥 나온 게 아니었습니다. 처음 작품부터 계속 해온 이야기의 완성판 같았습니다.

😕 아쉬웠던 점도 솔직하게 말씀드립니다

좋은 것만 말하면 거짓말이 되니까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설국열차랑 옥자, 이 두 편이 좀 걸렸습니다. 나쁜 영화가 아닙니다. 근데 순서대로 보다 보면 이 두 작품에서 뭔가 흐름이 살짝 끊기는 느낌이 듭니다. 설국열차는 영어로 찍은 영화다 보니까, 배우들 사이의 호흡이 봉준호 감독 특유의 그 미묘한 감각이 좀 희석된 느낌이 있었습니다. 의도는 분명히 있는데, 전달이 조금 낯설었습니다.

옥자는 어린이와 돼지의 우정이라는 설정이 저한테는 좀 어색했습니다. 사실 저도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습니다. 주제는 묵직한데 톤이 왔다 갔다 합니다. 아이들 영화 같다가 갑자기 되게 충격적인 장면이 나오고. 그 사이 어딘가에서 저는 좀 길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건 봉준호 감독 영화의 문제라기보다 순서대로 몰아보는 방식의 문제인데, 중간쯤 가면 패턴이 보여서 긴장감이 살짝 떨어집니다. 아, 이 캐릭터는 이렇게 되겠구나, 이 장면 다음엔 반전이 오겠구나. 이런 예측이 가능해지는 순간이 옵니다. 그게 좀 아쉬웠습니다.

❓ 자주 받는 질문들, 제 경험으로 답해드립니다

Q. 꼭 순서대로 봐야 하나요? 그냥 보고 싶은 것부터 봐도 되지 않나요?

물론 됩니다. 어떤 영화든 각각의 완성도는 충분합니다. 근데 저는 순서대로 보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감독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어떤 생각이 반복되는지를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영화 하나만 볼 때와는 다른 차원의 즐거움이었습니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꼭 순서대로 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Q. 봉준호 감독 영화, 처음 보는 사람은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제 기억이 맞다면, 저 주변에서 봉준호 처음 보는 분들한테 물어봤을 때 가장 많이 추천하는 게 살인의 추억이었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한국 정서가 가장 직접적으로 담겨 있고, 이야기 구조도 군더더기 없이 빠릅니다. 첫 번째 진입 영화로 손색이 없습니다. 기생충부터 보고 싶다는 분들도 있는데, 그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단, 기생충 보고 나서 앞 작품들 보면 오히려 기대치가 달라져서 평가가 좀 뒤틀릴 수 있습니다.

Q. 마더는 좀 무겁고 어둡다고 하던데, 그냥 넘어가도 될까요?

절대 넘어가지 마세요. 마더가 오히려 봉준호 감독 영화 중에서 가장 집중해서 봐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영화 보면서 진짜 많이 생각했습니다. 자식을 위해서 뭐든 하는 부모라는 이야기인데, 그 안에 인간이 가진 가장 어두운 면이 있습니다.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이 오래 남습니다. 무겁다고 피하면 봉준호 감독의 절반만 이해한 셈이 됩니다.

✍️ 마무리하며

퇴직하고 처음엔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습니다. 뭔가 의미 있어 보이는 걸 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근데 봉준호 감독 영화를 순서대로 쭉 보면서 깨달은 게 있습니다. 한 사람의 생각이 어떻게 쌓이는지, 어떻게 진해지는지. 그걸 따라가는 것 자체가 꽤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겁니다.

저는 30년 직장 생활 내내 남들이 중요하다는 것들을 좇아다녔습니다. 근데 봉준호 감독은 그 오랜 시간 동안 자기가 보는 세상을 자기 방식으로 꾸준히 이야기했습니다. 작품마다 다른 이야기인데,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것. 그래도 그 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

이 글이 봉준호 감독 영화를 처음 보시려는 분이든, 이미 몇 편 보셨지만 다시 보고 싶은 분이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저처럼 퇴직하고 시간이 생긴 분이라면, 진짜 강하게 추천드립니다. 혼자 소파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순서대로 천천히 보시면 됩니다. 그 시간이 생각보다 꽤 오래 기억에 남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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